[Special Report | Global Talent Bridge ⑩] 일본은 왜 기술자를 국가의 자산으로 키우는가

서영현 기자 / 기사승인 : 2026-11-05 09: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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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강국은 공장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만든다
▲ 빠른 속도와 압도적인 공장 규모로 경쟁하는 글로벌 제조업 시대에서 일본이 지속해 온 진짜 경쟁력은 최첨단 설비가 아닌 '기술자를 키우는 문화'에 있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의 지혜를 존중하고, 축적된 노하우를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전수하는 일본 제조업의 철학은 설비 투자와 빠른 스피드 중심의 한국 산업계에 던지는 직설적이고도 무거운 질문이다.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매일 오전 7시,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생산라인이 가동되기 전 공장 안은 분주하지만 조용하다.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들은 자신의 작업장으로 향하지만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한 신입 엔지니어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대신 전날 야간조가 남긴 작업일지를 읽고 생산라인을 천천히 걸으며 설비를 살핀다. 선배 기술자는 그를 재촉하지 않는다. 먼저 생산량이 아니라 작은 변화 하나를 발견하는 눈을 기르도록 돕는다.


이 장면은 일본 제조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자동차 강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은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기술자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성장시키는 나라다. 자동차는 결과이고, 사람은 원인이다.


세계 제조업은 오랫동안 생산량과 속도를 경쟁력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 답은 최신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자동화 설비가 있어도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을 반복할 수 있는 기술자가 없다면 품질은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은 일찍 깨달았다.


이 철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 제조업의 뿌리는 메이지유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서구 산업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면서도 단순한 모방에 머물지 않았다. 공과대학을 세우고 기술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했으며, 독일식 공학교육과 현장 중심 교육을 접목해 산업 인재를 길러냈다. 산업혁명은 공장을 세우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었고, 산업의 경쟁력은 사람의 역량에서 나온다는 인식이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 제조업의 상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도요다 사키치다. 그는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자동직기를 발명한 기술자였다. 그의 발명의 출발점은 거창한 사업계획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베를 짜며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사람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시작이었다.


이 질문은 일본 제조업의 철학을 상징한다. 일본은 처음부터 기계를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산업을 꿈꾸지 않았다. 사람의 노동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기계를 개발했다. 그래서 일본 제조업은 생산성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 위에서 성장했다.

● 도요타는 지금도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는 히토즈쿠리(사람 만들기)”라는 철학을 기업문화의 중심에 두고 있다
좋은 자동차는 좋은 설비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 만든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도요타의 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신입사원은 입사와 동시에 성과를 요구받지 않는다. 먼저 현장을 이해하고, 선배를 관찰하고, 작은 문제를 발견하는 눈을 기르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


이 문화는 일본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어 있다. 세계적인 공작기계 기업, 정밀부품 기업, 로봇 기업, 센서 기업들도 모두 비슷한 철학을 공유한다. 기술은 문서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일본 기업에는 수십 년 동안 한 분야를 연구하며 후배를 키우는 기술자가 존중받는다. 관리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 아니라, 최고의 기술자가 되는 것 역시 존경받는 경력이다.


여기서 한국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설비를 갖추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과 배터리 공장,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그 설비를 30년 동안 발전시키고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할 기술자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키우고 있는가.


산업 경쟁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장은 몇 년이면 지을 수 있지만, 한 명의 숙련 기술자를 키우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일본 제조업의 진짜 경쟁력은 공장의 규모가 아니라, 그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는 문화에 있다.


도요타 공장의 아침은 오늘도 조용히 시작된다. 생산라인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지만 사람은 이미 배우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배움이 수십 년 동안 일본 제조업을 세계 정상에 세워온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다.

● 세계는 왜 도요타를 배우는가
생산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시스템
195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고 자본도 부족했다. 미국처럼 대량생산 설비를 갖출 수도 없었고, 독일처럼 오랜 산업기반도 없었다. 적은 자본으로 세계 기업과 경쟁해야 했던 도요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돈이 없다면 무엇으로 경쟁할 것인가.” 그 질문 끝에서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세계가 연구하는 도요타 생산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 TPS)이다.


많은 사람들은 TPS를 재고를 줄이는 생산기법이나 공장 운영 방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TPS의 본질은 공정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만드는 문화다.


도요타 공장에는 누구나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기업의 목표라면 라인을 멈추는 일은 금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요타는 반대로 생각했다. 작은 문제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낭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생산라인에는 안돈(Andon)이라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작업자가 이상을 발견하면 즉시 신호를 보내고, 필요하면 생산라인 전체를 멈춘다. 중요한 것은 라인을 멈춘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문제를 발견한 사람을 조직의 경쟁력을 지키는 구성원으로 평가한다.


이 문화는 한국 기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아직도 실수를 감추려는 조직문화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업은 실수를 숨기는 조직이 아니라 실수를 가장 빨리 발견하는 조직이라는 사실을 도요타는 보여준다.


도요타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원칙이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단순히 해결하지 않는다. 반드시 다섯 번 ‘왜(Why)’를 묻는다.
왜 불량이 발생했는가.
왜 그 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는가.
왜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왜 관리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는가.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었는가.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근본 원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도요타에서는 문제를 빨리 덮는 사람보다 끝까지 원인을 추적하는 사람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일본 특유의 카이젠(改善) 문화와도 연결된다. 카이젠은 거대한 혁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지는 작은 개선을 매일 반복하는 습관이다.


볼트 하나의 위치를 바꾸는 일, 작업자의 동선을 몇 걸음 줄이는 일, 공구를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두는 일처럼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수십 년 동안 축적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만들었다.


도요타는 이를 특별한 천재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신입사원도 개선을 제안할 수 있고, 숙련 기술자도 계속 배우며, 공장장도 현장을 직접 확인한다. 직급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가 겐바(現場)다. 겐바는 단순히 생산현장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한 곳으로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하고,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는 행동 원칙이다.


회의실에서 만든 보고서보다 생산라인에서 들은 한마디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제조문화의 특징이다. 그래서 관리자도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TPS는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법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교육 시스템이다. 신입사원은 문제를 발견하는 법을 배우고, 중간관리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며, 숙련 기술자는 다음 세대에게 경험을 전수하는 법을 배운다.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TPS를 벤치마킹했지만 모두가 같은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많은 기업은 생산기법만 가져왔고, 도요타는 사람을 키우는 문화를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산방식은 복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성장시키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로 그 차이가 일본 제조업이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해 온 이유다.


여기에는 일본 산업정책의 특징도 숨어 있다. 대학은 연구를 담당하고, 연구소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며, 기업은 이를 제품으로 연결한다. 정부는 장기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지원한다. 공업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은 숙련 기술자를 길러내고, 대학은 연구자를 육성하며, 기업은 현장에서 다시 사람을 성장시킨다.

● 일본은 왜 ‘100년 기술’을 만드는가
혁신보다 어려운 것은 기술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일이다. 일본 제조업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이나 카이젠(改善), 품질경영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결과일 뿐이다. 일본 제조업을 오랫동안 지탱해 온 더 근본적인 힘은 ‘기술을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뛰어난 기술자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한 사람의 은퇴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바로 이 문제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인식했다.


공장을 짓는 데는 몇 년이면 충분하다. 최신 생산설비도 자본이 있으면 비교적 빠르게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숙련 기술자의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같은 공정에서 축적한 감각과 판단력은 설계도나 매뉴얼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기업들은 기술을 문서보다 사람을 통해 전승하는 자산으로 바라본다.


일본 제조업 현장에서는 숙련 기술자가 신입사원을 곁에 두고 함께 작업하는 모습이 흔하다. 작업 순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구를 잡는 힘의 차이, 기계 소리의 미세한 변화, 제품 표면의 작은 흔들림까지 몸으로 익히도록 한다. 이런 능력은 숫자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불량률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관리자가 되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다. 평생 한 분야를 연구하고 후배를 길러내는 기술자 역시 조직의 핵심 자산으로 존중받는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회사를 떠나면 단순히 한 명의 직원이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철학은 일본 제조업의 세대교체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기업은 정년을 앞둔 숙련 기술자와 젊은 엔지니어가 함께 일하는 기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생산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경험을 이전하는 시간을 투자한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 경쟁력을 더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AI는 불량을 예측하고 공정을 분석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직관까지 완전히 대신하기는 어렵다. 일본 기업들은 AI를 기술자의 대체재가 아니라 기술자의 판단을 돕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제조업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디지털 트윈, 스마트팩토리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한 가지 원칙은 유지한다. 기술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완성한다.


대한민국 역시 세계적인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는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만이 아니다. 축적된 기술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하고, 숙련 인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육성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기술자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지금,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전수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산업은 예상보다 큰 공백을 맞을 수 있다. AI와 자동화가 발전할수록 사람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경험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는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일본 제조업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기술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일에도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미래 제조업의 경쟁은 더 이상 공장 규모나 생산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세대가 축적한 기술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혁신을 더할 수 있는 나라가 가장 강한 제조국이 될 것이다.


도요타 공장의 아침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라인이 움직이기 전 먼저 시작되는 것은 기계의 작동이 아니라 사람의 성장이다. 그리고 그 성장이 하루의 생산을 넘어, 수십 년 뒤에도 이어질 기술과 산업의 미래를 만든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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