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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의 경쟁이 개별 기업의 생산 능력을 넘어 연구개발과 인재, 자본, 공급망이 결합된 산업 생태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대만 신주과학단지, 중국 선전, 싱가포르 원노스 등 주요 산업클러스터는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 투자자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기술혁신과 산업 성장을 이끌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한국 역시 지역별 산업 특성을 살리면서 연구개발과 창업, 투자, 사업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클러스터 육성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기술 협력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참여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 구축이 향후 경쟁력 확보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
● 산업의 경쟁은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가 결정한다
산업단지와 산업클러스터는 무엇이 다른가. 20세기 산업정책의 핵심은 기업을 한곳에 모아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정부는 공장을 집적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도로와 항만, 전력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키웠다. 산업단지는 대량생산 시대를 이끈 핵심 성장 모델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첨단산업은 하나의 기업이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설계와 생산, 장비와 소재,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바이오는 대학과 병원, 연구소, 제약회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인공지능 역시 데이터와 반도체, 클라우드,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발전해야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산업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다. 산업클러스터는 기업만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 인재 양성, 생산, 금융, 물류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혁신 거점을 의미한다.
● 세계는 왜 산업클러스터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가
세계 주요 국가들은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업 하나를 지원하는 것보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육성하는 것이 훨씬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에서는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은 곧바로 기업으로 이전되고, 기업은 이를 제품으로 상용화한다. 투자자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정부는 세제와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을 지원한다.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고 국가 경쟁력도 함께 높아진다.
이 때문에 산업클러스터는 단순한 지역개발 정책이 아니라 국가 산업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독일, 싱가포르, 중국, 대만 등 기술 선도국들은 모두 자국을 대표하는 산업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미래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혁신은 ‘거리’가 아니라 ‘연결’에서 탄생한다. 과거에는 공장과 공장의 거리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과 기술, 자본이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다.
예를 들어 연구기관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스타트업은 이를 사업화하고, 대기업은 생산 역량을 제공하며, 투자기관은 자금을 지원한다. 대학은 전문 인력을 공급하고 정부는 규제를 개선한다. 이러한 연결 속도가 빠를수록 새로운 산업은 더 빠르게 성장한다.
산업클러스터의 경쟁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에서는 경쟁 기업끼리도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대학과 기업이 인재를 함께 양성하며, 투자자와 정부가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한다.
● 산업클러스터는 미래 산업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이끄는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우주항공, 친환경 에너지 산업은 대부분 산업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사업화되고, 우수한 인재가 모이며,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도 자연스럽게 집적된다. 결국 산업클러스터는 기업이 입주한 공간이 아니라 혁신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플랫폼이다. 세계 각국이 산업클러스터 경쟁에 막대한 예산과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세계를 움직이는 산업클러스터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미국 실리콘밸리, 기술보다 생태계를 만든 도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산업클러스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다. 많은 사람들은 애플, 엔비디아, 구글, 메타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서는 반대다. 세계적인 기업이 실리콘밸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라는 혁신 생태계가 세계적인 기업을 탄생시켰다.
실리콘밸리의 출발점은 스탠퍼드대학교였다. 대학에서 연구된 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지고, 벤처캐피털이 초기 자금을 공급하며, 글로벌 기업이 이를 인수하거나 협력하는 구조가 수십 년간 반복됐다. 연구개발과 창업, 투자,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하나의 순환 생태계를 이루면서 세계 최대 혁신 허브로 성장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AI), 반도체, 클라우드, 자율주행, 우주산업 등 미래 산업의 중심지로 평가받는다. 세계 각국의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도 기업 때문이 아니라 혁신 생태계 때문이다.
▶ 대만 신주과학단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심장이 되다
대만의 신주과학단지는 산업클러스터가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980년 정부 주도로 조성된 이후 대학과 연구기관, 반도체 기업을 집적시키는 전략을 추진했고, 이는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현재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상당 부분이 신주과학단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설계기업과 제조기업, 장비업체, 소재기업이 한 지역 안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했다.
대만 정부는 단순히 공장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투자, 세제 지원, 국제 협력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산업 생태계를 키웠다. 이러한 장기 전략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인이 됐다.
▶ 중국 선전, 제조도시에서 혁신도시로 변신하다
선전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산업클러스터 가운데 하나다. 1980년 경제특구 지정 당시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했지만, 개혁개방 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 제조업 기반 확충을 통해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오늘날 선전은 드론, 통신장비, 전기차, AI, 스마트 제조 등 첨단산업이 집적된 혁신 도시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큰 강점은 개발 속도다. 제품을 설계하면 부품을 조달하고 시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나의 도시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공급망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조 생태계는 세계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선전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기술 혁신과 생산 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산업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 싱가포르 원노스, 국가가 설계한 혁신 플랫폼
싱가포르의 원노스(one-north)는 첨단 연구개발 중심의 산업클러스터다. 바이오,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하나의 공간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국가가 계획적으로 조성했다.
원노스의 특징은 개방형 혁신이다. 글로벌 기업과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정부는 연구개발 자금과 창업 지원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한다. 단순한 산업단지가 아니라 연구와 창업, 투자와 사업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혁신 플랫폼인 셈이다.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와 제한된 자원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과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원노스는 이러한 국가 전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시아 바이오와 딥테크 산업의 중요한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 세계 산업클러스터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성공 공식
▶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는 기업보다 인재를 먼저 키운다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퍼드대학교와 버클리대학교가 있고, 대만 신주과학단지 주변에는 국립칭화대학교와 국립양명교통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싱가포르 원노스 역시 국립싱가포르대학교(NUS)와 난양공과대학교(NTU)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공장을 먼저 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새로운 기술과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기업은 이를 산업으로 연결했다. 결국 산업클러스터의 핵심 경쟁력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첨단산업은 우수한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 연구개발과 투자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된다
기술은 연구실에서 탄생하지만 산업은 연구실 밖에서 완성된다.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는 연구개발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사업화가 시작되는 공간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연구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벤처캐피털이 초기 자금을 공급하며, 글로벌 기업이 공동 개발과 인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한다.
신주과학단지는 연구기관과 기업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선전은 시제품 제작부터 양산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공급망을 구축했다. 원노스는 정부 연구개발 지원과 글로벌 기업의 참여를 결합해 바이오와 딥테크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연구와 투자, 사업화가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 세계 산업클러스터의 가장 큰 특징이다.
▶ 정부는 지원자가 아니라 생태계 설계자다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를 살펴보면 정부의 역할은 보조금 지급에 머물지 않는다. 정부는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규제 개선, 글로벌 기업 유치, 국제 협력까지 장기적인 전략을 설계한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선정하고 수십 년간 일관된 정책을 유지했다. 싱가포르는 바이오와 디지털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며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했고, 중국은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규제 혁신과 투자 유치를 동시에 추진했다. 성공한 산업클러스터는 정부가 기업을 대신하는 곳이 아니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 산업클러스터의 경쟁력은 연결의 속도에서 나온다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는 기업 수가 많아서 경쟁력이 높은 것이 아니다. 기술과 사람, 자본, 정보가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기업은 필요한 기술을 연구기관에서 찾고, 연구기관은 기업의 수요를 연구개발에 반영한다. 투자자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발굴하고, 대학은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한다. 이러한 연결이 반복될수록 혁신의 속도는 빨라지고, 새로운 산업도 빠르게 성장한다.
오늘날 세계 산업의 경쟁은 제품 경쟁을 넘어 생태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으며, 얼마나 강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 한국은 어떤 산업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하는가
▶ 산업단지에서 혁신클러스터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키워왔다. 울산은 자동차와 조선, 포항은 철강, 구미는 전자산업, 창원은 기계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다. 이러한 산업단지는 수출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했지만, 인공지능(AI), 바이오,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이 주도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미래 산업은 공장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연구개발, 창업, 투자, 인재 양성, 글로벌 협력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룰 때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다. 이제는 기업을 유치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투자기관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클러스터를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 지역마다 같은 산업을 육성하기보다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는 서로 같은 산업을 경쟁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는 AI와 소프트웨어, 신주과학단지는 반도체, 선전은 첨단 제조와 하드웨어, 원노스는 바이오와 연구개발이라는 분명한 역할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모든 지역이 반도체나 AI를 외치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각 지역이 보유한 산업 기반과 대학, 연구기관, 기업을 연계해 특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판교는 AI와 소프트웨어, 송도는 바이오, 대덕은 국가 연구개발, 울산은 미래 모빌리티와 친환경 에너지처럼 지역의 강점을 살린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 중소기업도 산업클러스터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산업클러스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기업만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클러스터 안에서는 대기업과의 공동 연구개발, 대학과의 기술 협력, 연구기관의 시험·인증 지원, 투자기관의 자금 조달, 해외 기업과의 협력 기회가 동시에 열린다. 개별 기업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산업 생태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역시 자신이 속한 지역의 산업클러스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단순한 입주기업이 아니라 공동 연구와 기술 교류, 해외시장 진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혁신 주체가 될 때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 수 있다.
※ 소상공인포커스 시사점
세계 산업의 경쟁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규모나 생산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투자자, 정부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혁신을 만들어 내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대한민국도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혁신클러스터를 육성해야 한다. 특히 지역별 특화산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과 창업, 투자, 수출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단순히 지켜보는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산업클러스터는 대기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라면 누구나 세계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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