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산업도시를 떠올리면 대부분 선전의 혁신기업, 동관의 제조업, 쑤저우의 산업단지, 항저우의 디지털경제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의 첨단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기술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살펴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장쑤성의 성도 난징(南京)이다.
난징은 제조업 생산량만으로는 선전이나 쑤저우를 따라가지 않는다. 항만 규모도 상하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미래 산업을 설계할 때 난징은 언제나 핵심 거점으로 등장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난징은 공장을 먼저 만든 도시가 아니라 연구개발 역량을 기반으로 산업을 키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약 3,000개가 넘는 대학이 있지만, 난징은 베이징 다음으로 국가 중점대학과 연구기관이 밀집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난징대학교, 동남대학교를 비롯한 주요 대학과 중국과학원 산하 연구기관, 국방과학 연구시설이 집적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구 기반이 반도체·인공지능·정보통신·신소재 산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난징의 경쟁력은 연구 논문 수가 아니라 기초과학이 산업으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에 있다.
◆ 정치 중심에서 과학기술 중심으로
난징은 중국 역사에서 여러 왕조의 수도였다.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개혁개방 이후에도 단순한 행정도시로 남지 않았다. 장쑤성은 제조업을 쑤저우와 우시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난징에는 연구개발과 첨단기술 기능을 집중시켰다. 이는 도시 간 경쟁보다 역할을 분담하는 장강삼각주의 전략과도 연결된다. 난징은 기술을 개발하고, 쑤저우는 이를 산업화하며, 우시는 스마트 제조를 실현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 반도체 산업의 출발점
난징은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연구개발의 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설계(팹리스), 반도체 장비, 전력반도체, 집적회로 설계 인력 양성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대학과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이 창업과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특히 난징은 단순히 대기업을 유치하는 전략보다 반도체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도체 산업은 공장보다 사람을 먼저 확보해야 성장한다는 점에서 난징의 전략은 매우 현실적이다.
◆ AI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도시
최근 난징은 생성형 AI와 산업용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항저우와 다르다. 항저우가 플랫폼과 민간기업 중심이라면, 난징은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AI 원천기술을 축적하고 이를 기업으로 이전하는 구조를 선택했다. AI 알고리즘, 반도체 설계, 산업용 소프트웨어, 스마트 제조 기술은 모두 대학 연구실과 기업 연구소의 협력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난징은 중국의 ‘AI 인재 공급기지’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 국방과 민간기술의 융합
난징의 또 다른 특징은 국방과학기술과 민간산업의 연계다. 항공전자, 통신, 레이더, 위성기술, 정보보안 등은 국방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이 민간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이는 미국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 초기 발전 과정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국가 연구개발이 민간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제조업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 투자
난징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산업 규모보다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다. 도시 경쟁력을 생산량으로 평가하면 난징은 평범한 제조도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 인력과 특허, 기술사업화, 대학·기업 공동연구를 함께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난징은 미래 산업을 준비하는 도시이며, 지금의 생산보다 10년 후의 산업 경쟁력을 만드는 도시다.
▶ 난징(南京), 연구실에서 산업을 키우는 도시… 중국 혁신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엔진
대학과 연구소, 기업과 정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일 때 도시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중국 첨단산업을 이해할 때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과 산업단지를 먼저 바라본다. 하지만 난징을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성장 공식을 발견하게 된다. 난징은 공장을 늘리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기술이 탄생하고, 인재가 성장하며, 연구성과가 기업으로 이전되는 ‘혁신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이것이 난징과 다른 산업도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선전이 창업과 민간기업의 역동성으로 성장했고, 항저우가 플랫폼 경제를 기반으로 발전했다면, 난징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을 산업으로 연결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 산학연 협력이 도시경제를 움직인다
난징의 혁신은 대학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은 기술이전센터를 거쳐 기업으로 이전되고, 기업은 다시 연구개발 자금을 대학과 공동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는 단순한 지원기관이 아니라 조정자(Coordinator)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반도체 공정기술 개발에 필요한 연구를 의뢰하면 대학 연구실과 연구기관, 시험인증기관, 금융기관을 연결해 하나의 프로젝트로 운영한다. 연구자는 기술을 산업에 적용할 기회를 얻고, 기업은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며, 정부는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확보하는 구조다. 이처럼 난징은 연구개발과 산업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운영한다.
◆ 인재가 떠나지 않는 도시의 조건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난징은 우수한 대학이 많다는 장점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졸업생이 지역에 남아 창업하거나 기업에 취업하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청년 창업공간과 기술창업 인큐베이터, 연구개발 보조금, 초기 투자 지원, 산학 공동연구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대학 인재가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비율을 줄이고 있다. 이는 한국의 지방도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와도 연결된다. 국내에서도 우수한 대학은 많지만, 졸업생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난징은 교육정책과 산업정책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 기술사업화가 빠른 이유
많은 도시가 우수한 연구성과를 보유하고도 산업화에는 실패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실과 기업 사이의 간격이 크기 때문이다. 난징은 이 간격을 줄이기 위해 기술사업화 전문기관과 창업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술 특허가 등록되면 기업이 이를 시험 생산할 수 있도록 실증시설을 제공하고, 투자기관은 기술가치 평가를 바탕으로 초기 자금을 공급한다. 연구자는 논문으로 끝나지 않고 창업자나 기술자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는 신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실패 위험을 낮춘다.
◆ 국방기술의 민간 확산
난징은 중국 국방과학기술 연구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군사기술 자체가 아니라 민간 활용 가능성이다. 정밀센서, 통신기술, 항법장치, 전자제어, 신소재 등은 원래 국방 분야에서 발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차와 의료기기, 산업용 로봇,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주요 기술혁신 도시를 보면 이러한 사례는 흔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초기에는 국방 연구개발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 민간 ICT 산업으로 확장됐다. 난징 역시 연구성과를 민간산업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도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
◆ 장강삼각주의 ‘두뇌’ 역할
장강삼각주는 세계 최대 제조업 권역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거대한 경제권은 도시마다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상하이는 금융과 글로벌 경영 기능을 담당한다. 쑤저우는 첨단 제조와 산업화의 중심이다. 우시는 스마트 제조와 산업 디지털화를 이끈다. 항저우는 플랫폼 경제와 AI 산업을 발전시킨다. 그렇다면 난징의 역할은 무엇일까. 난징은 기술과 인재를 공급하는 두뇌 역할을 수행한다. 새로운 연구성과가 난징에서 나오고, 이를 주변 도시가 산업화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장강삼각주는 개별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혁신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 대덕연구단지와 난징의 차이
한국에서 난징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곳은 대전의 대덕연구단지다. 두 지역 모두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대덕은 연구개발 역량이 세계적 수준임에도 연구성과가 지역 산업으로 연결되는 비율을 높이는 과제가 남아 있다. 반면 난징은 대학과 기업,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연구성과를 산업 현장으로 이전하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긴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물론 두 도시의 제도와 경제 환경은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연구와 산업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에도 충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 「지역경제진단」
난징은 화려한 마천루나 거대한 공장으로 성장한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사람과 기술을 키우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도시다. 미래 산업의 경쟁은 생산설비보다 원천기술과 인재 확보에서 시작된다. 난징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과 정부가 긴 호흡으로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연구개발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했다.
한국도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반도체 공장과 국가산단 조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력은 산업단지의 규모보다 얼마나 많은 연구성과가 기업으로 이전되고, 얼마나 많은 청년 인재가 지역에 정착하며, 얼마나 많은 기술기업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가에 달려 있다. 난징은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미래 산업은 공장을 먼저 짓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과 기술을 먼저 키우는 도시가 이끌게 될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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