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에 묶인 한국 금융 vs 산업 가능성을 평가하는 대만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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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출은 늘어나는데 왜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하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몸집 불리기를 넘어 가격 결정권을 쥐는 '시장 주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OEM에서 ODM, 그리고 OBM으로 이어지는 대만식 성장 사다리처럼 정교한 산업 설계가 필요하다. 금융과 정책, 시장 경험이 맞물려 기업을 다음 단계로 밀어 올려주는 '스케일업 구간'의 구조적 복원이야말로 한국 산업의 노쇠화를 막을 유일한 해법이다.(사진=벡스코) |
기업의 성장 경로는 누가 만드는가. 산업 구조와 정책 설계가 함께 작동할 때 기업은 낮은 시장에서 높은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기업이 일정 수준까지 성장한 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간에 도달한다. 매출은 증가하지만 산업 안에서의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규모는 커지지만 기업의 영향력은 확장되지 않는다. 이 지점이 바로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인 스케일업 구간이다.
스케일업은 단순한 성장 단계가 아니다. 기업이 작은 기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며 생산 중심 기업이 시장 중심 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이 구간에서는 생산 능력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의 조직 구조, 시장 접근 방식, 거래 관계, 자금 구조가 동시에 변화해야 한다.
◆ ‘창업 지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성장 사다리’의 질적 설계로
다음 단계는 자가브랜드생산(OBM) 단계다. 기업이 자체 브랜드와 유통망을 확보하고 시장에 직접 진입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단순 공급자가 아니라 시장의 주체로 등장한다. 가격을 제시하는 위치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산업 전체에 존재하는 성장 사다리다. 기업이 일정 수준의 경험과 자본을 축적하면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존재한다. 산업 정책은 이 경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은 시장 안에서 점진적으로 위치를 바꾸며 성장한다.
한국 산업 구조에서는 이 구간에서 단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제조 기업이 생산 능력과 기술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규모 이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기업은 생산량을 늘리고 설비를 확대하지만 시장 구조 안에서의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특히 납품 중심 거래 구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납품 구조에서는 거래 관계가 안정적인 대신 기업의 이동 가능성이 제한된다. 기업은 일정 수준의 매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시장으로 이동하기는 어렵다. 거래 구조가 고정되면 성장의 방향도 제한된다.
스케일업 구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자금 구조다. 초기 창업 단계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지원과 금융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업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지원 구조는 급격히 줄어든다. 기업은 더 큰 투자를 필요로 하지만 그에 맞는 자금 구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대만에서는 이 구간에서 산업 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융은 단순한 대출이 아니라 산업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업의 기술과 시장 가능성이 인정되면 자금은 성장 단계에 맞게 공급된다. 금융은 기업의 이동을 지원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한국에서는 금융 구조 역시 스케일업 단계에서 기업의 이동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은 안정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보다는 현재의 담보와 재무 상태를 우선적으로 평가한다. 기업이 새로운 시장으로 이동하려 할 때 필요한 위험 자본이 부족해진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시장 경험이다. 기업이 더 큰 시장으로 이동하려면 새로운 거래 구조와 경쟁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특정 거래 구조에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새로운 시장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결국 스케일업 구간의 단절은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 구조와 금융 구조, 정책 설계와 산업 경험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이 구간이 형성된다. 기업이 노력만으로 넘어가기에는 구조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산업 경쟁력은 이 구간에서 결정된다. 많은 기업이 초기 단계에서 사라지는 산업보다 일정 규모 이후 성장이 멈추는 산업이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은 계속해서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 기업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지 못하면 경쟁력은 축적되지 않는다.
따라서 산업 정책의 중요한 질문은 단순한 창업 지원이 아니다. 기업이 스케일업 구간을 넘어갈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 성장 사다리가 없는 산업에서는 기업이 많아져도 산업은 강해지지 않는다.
결국 다시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는 기업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업이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산업의 미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결정된다.
● 정보 코너 스케일업 단계의 특징기업 규모 확대와 조직 구조 변화가 동시에 발생하는 시기 생산 중심 기업에서 시장 중심 기업으로 전환되는 시기 |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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