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개전투는 끝났다... 중소기업 해외 진출, 왜 '기업'이 아닌 '산업' 단위여야 하는가
대만 산업정책의 비밀 병기, 경제와 외교가 하나로 움직이는 '원 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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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이 자금과 R&D 등 ‘개별 지원’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대만 등 선진국들은 산업 정책과 외교 전략을 결합해 국가가 먼저 시장을 여는 ‘시장 설계(Market Design)’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 각개전투 방식의 해외 진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만의 TAITRA 모델처럼 산업 단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경제 외교를 통해 중소기업이 안심하고 진입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을 국가가 직접 설계해야 한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
지금까지 한국 중소기업 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부분 지원 정책을 중심으로 논의를 해왔다. 연구개발 지원, 금융 지원, 판로 지원 같은 정책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금과 기술, 시장 접근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만드는 국가들의 산업 정책을 살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보인다. 그들은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장 자체를 설계한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기업 지원 정책은 개별 기업을 돕는 정책이다. 반면 시장 설계 정책은 산업 구조를 바꾸는 정책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산업 정책은 자연스럽게 외교 정책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대만 산업 정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경제 정책과 외교 전략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만은 오래전부터 산업 정책을 해외 시장 전략과 연결해 왔다. 그 배경에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 개별 기업 돕는 시혜적 접근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국가 전략 필요
대만의 내수 시장은 크지 않다. 인구 규모와 시장 규모만으로 산업을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만은 산업 정책의 중심을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 두었다. 대만 기업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목표로 성장하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여러 실행 기관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 대만무역발전협회(TAITRA, Taiwan External Trade Development Council)다.
TAITRA는 단순한 무역 지원 기관이 아니다. 대만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시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은 세계 각국에 사무소를 두고 바이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해외 전시회를 단순한 행사로 운영하지 않는다. 산업 단위의 시장 진입 플랫폼으로 설계한다.
예를 들어 특정 산업의 기업들이 함께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면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전에 바이어 매칭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산업 단위 상담이 이루어진다. 전시회가 끝난 이후에도 계약이 이어질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유지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전시회가 단순한 홍보 행사가 아니라 실제 계약이 이루어지는 시장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대만 전시회가 계약 성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이 혼자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단위로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대만의 산업 정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해외 시장 전략을 외교 정책과 연결한다. 경제 외교(economic diplomacy)라는 개념이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경제 외교란 외교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입을 지원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대만 정부는 해외 외교 채널과 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그리고 그 시장에 자국 기업이 진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단독으로 시장을 개척하지 않는다. 국가가 먼저 시장을 열고 기업이 그 시장에 들어간다. 이것이 국가 전략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산업 구조는 이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 역시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해외 진출은 대부분 개별 기업의 전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은 자체 네트워크와 브랜드를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 속에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중소기업의 상황은 다르다.
중소기업은 브랜드 인지도도 부족하고 해외 네트워크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해외 시장 진입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이 해외 전시회에 참여할 때 흔히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 각 기업이 개별 부스를 마련하고 제품을 전시한다. 바이어를 만나 상담을 진행한다. 그러나 상담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경험은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 문제는 기업의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대만은 산업 단위로 시장을 개척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한국은 기업 단위로 시장에 접근하는 구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개별 기업이 이 과정을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산업 단위 네트워크가 존재하면 시장 진입 과정은 훨씬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중소기업 정책을 산업 정책과 외교 전략 속에서 함께 설계한다. 시장 진입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이러한 전략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술 경쟁이 심화되고 공급망(supply chain)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국가 단위의 산업 전략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이러한 구조가 더욱 중요하다. 대기업은 스스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구조가 필요하다. 국가 전략이 없는 시장에서는 기업이 각자 생존해야 한다. 반대로 국가 전략이 있는 시장에서는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기업이 시장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가 시장을 설계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산업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만드는 국가는 기업만 강한 나라가 아니다.
시장 전략이 강한 나라다. 그리고 그 전략은 언제나 산업 정책과 외교 정책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결국 같은 질문일 것이다. 기업의 노력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국가의 전략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다음 산업 정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 수출 경쟁력은 기업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시장 진입 구조가 경쟁력을 만든다.
산업 정책과 외교 전략이 연결될 때 시장은 열린다.
● 정보 코너 경제 외교(economic diplomacy)외교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자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입을 지원하는 국가 전략 대만무역발전협회(TAITRA) 대만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핵심 기관 |
소상공인포커스 / 노금종 기자 nkj1966@ilyo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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