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분석] 국내 벤처캐피탈은 왜 성장의 자금이 아니라 압박의 구조가 되는가

서영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09-22 15: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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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회수 사이에서 어긋나는 시간과 관리의 문제
VC의 7년 vs 임상의 10년... 태생부터 엇갈린 두 시간 축의 위험한 동행
▲ 바이오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도 벤처캐피탈(VC)의 단기 회수 주기와 바이오 산업의 장기 개발 주기 사이의 '시간적 불일치'로 파열음이 발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자금의 흐름은 정교하게 관리되지만 기술의 본질적 가치와 임상 설계는 소외되는 국내 투자 관리 체계의 한계를 넘어, 자본이 속도를 강요하는 압박이 아닌 연구를 지탱하는 안정적 기반이 될 수 있는 구조적 재설계가 시급하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사진=pexels)

 

 

“투자를 받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부족해졌습니다.” 한 바이오 기업 대표의 말이다. 외부 자금을 유치하면 연구가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투자 이후 일정은 더 촘촘해졌고 임상 단계는 압축되었으며 사업화 계획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요구되었다. 자금이 들어오면서 불확실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에 대한 압박이 더 커진 것이다. 이 현상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벤처캐피탈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벤처캐피탈은 일반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초기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이후 기업 가치 상승을 통해 수익을 회수하는 금융 구조를 의미한다. 투자 자금은 개인 자산이 아니라 연기금과 금융기관, 기업 등의 출자자로부터 조성된 펀드 형태로 운용되며 일정 기간 내에 투자와 회수를 모두 완료해야 한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 자체가 아니라 회수 시점이다. 자금은 투입되는 순간부터 회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장기 연구보다 단기 성과에 매몰된 프로젝트


문제는 이 시간 구조가 바이오 산업의 개발 시간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탈 펀드는 약 5년에서 7년 사이의 기간을 기준으로 설계되며 이 기간 안에서 투자, 성장, 회수까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 바이오 산업에서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는 과정은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임상 단계만 보더라도 초기부터 상업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각 단계마다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 두 시간 구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여러 현상이 발생한다. 첫 번째는 상장의 조기화다. 국내에서는 투자 회수의 주요 수단이 기업공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임상 단계가 충분히 진행되기 이전에 상장이 추진되는 경우가 나타난다. 일정 수준의 기술과 데이터가 확보되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이를 통해 회수를 시도하는 구조다.


실제 사례를 보면 임상 초기 단계에서 상장한 이후 기대치가 유지되지 못하면서 기업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초기에는 기술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지만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드러나면서 시장 평가가 조정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추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연구 일정 역시 영향을 받는다.


두 번째는 기술이전 시점의 변화다. 원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임상 데이터가 확보된 이후에 외부 기업과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투자 회수 시점에 맞추기 위해 기술이전이 앞당겨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초기 단계에서 기술이 이전되면 리스크는 줄어들지만 동시에 기업이 확보할 수 있는 수익 구조는 제한될 수 있다.


국내 한 바이오 기업의 경우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글로벌 기업과 기술이전을 체결했지만 이후 임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면서 더 높은 가치로 계약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반대로 기술이전을 늦추다가 자금이 소진되면서 협상력이 약화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어느 시점에서 기술이전을 선택하느냐는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압박 속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연구 방향의 조정이다. 투자 이후 기업은 단순히 기술 개발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설명 가능한 일정과 결과를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인 연구보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조정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기술의 완성도보다 일정 관리가 우선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국내 벤처캐피탈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특징이 드러난다. 자금에 대한 관리 체계는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기술 자체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투자 이후 기업은 정기적으로 경영 현황과 자금 사용 내역을 보고해야 하며 일정과 목표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진다. 매출과 비용, 인력, 자금 소진 속도와 같은 항목은 체계적으로 점검된다.


그러나 기술 개발의 본질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상 설계의 적절성, 데이터 해석 방식, 실패 가능성에 대한 구조적 검증,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조건 설정과 같은 요소는 투자 관리의 핵심 항목으로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금은 관리되지만 기술은 관리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차이는 의사결정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금은 일정과 숫자로 관리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지만 기술은 불확실성과 확률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그 결과 기업은 기술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움직이기보다 자금 소진 속도와 일정에 맞춰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임상 설계보다 일정 관리가 먼저 논의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조건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지보다 언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순간 연구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기술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자금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 간극이 반복되면서 관리 구조 자체가 기술보다 자금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해외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에서는 일부 투자사가 기술 자문 그룹을 별도로 운영하거나 특정 분야 전문가를 통해 임상 설계와 데이터 해석에 대한 검증을 병행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투자와 동시에 기술에 대한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또한 기업공개뿐 아니라 인수합병을 통한 회수 경로가 활성화되어 있어 일정에 대한 압박이 분산된다.


일본에서는 장기 자금 구조와 함께 기업 내부에 축적된 연구 인력이 기술 관리 기능을 수행한다. 외부 자본이 유입되더라도 연구 방향과 속도는 내부에서 통제되는 경우가 많으며 임상 단계가 충분히 진행된 이후에야 외부 협력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투자 회수 압박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연구 일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국내 구조를 다시 보면 문제의 본질은 자본의 부족이 아니라 자본의 시간과 관리 방식이다. 투자 자체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자본이 요구하는 회수 시점과 산업이 필요로 하는 개발 시간이 서로 맞지 않으며 자금 관리 체계는 존재하지만 기술 관리 체계는 충분히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 이중의 간극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연구 방향과 일정에 변화를 가져온다.


중요한 것은 벤처캐피탈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바이오 산업에서 외부 자금은 필수적인 요소다. 문제는 자본이 어떻게 들어오는가가 아니라 어떤 시간 구조와 어떤 관리 구조를 가지고 들어오는가에 있다. 투자와 회수 사이의 간격이 산업 구조와 맞지 않을 경우 자금은 성장의 기반이 아니라 압박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오 산업에서 자본은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 자본이 요구하는 시간과 산업이 필요로 하는 시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기업은 기술과 시장 사이에서가 아니라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국내 벤처캐피탈 구조의 핵심 문제는 투자 여부가 아니라 시간과 관리의 불일치다. 자본은 공급되고 있지만 그 자본이 머무르는 기간은 산업이 요구하는 시간보다 짧고 관리 체계는 자금에 집중되어 있으며 기술에 대한 관리 기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차이가 반복되면서 기업은 연구의 완성보다 일정의 충족을 우선하게 되고 그 결과는 산업 전체의 구조로 이어진다.


벤처캐피탈은 투자 구조가 아니다. 시간과 관리의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가 산업과 어긋나는 순간 자본은 성장의 기반이 아니라 속도를 강요하는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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