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전략] 한국 제조 중소기업은 왜 브랜드를 두려워하는가

김경훈 대기자 / 기사승인 : 2025-06-17 15:54:20
  • -
  • +
  • 인쇄
하청 구조가 만든 인식의 한계
브랜드는 교육이 아닌 '이동 경로'의 문제... 산업 플랫폼이 전환 시점 열어줘야
▲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자체 브랜드 구축에 소극적인 이유는 경영자의 의지 부족이 아닌, 브랜드 전환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개별 기업이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산업 경로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대기업 납품 중심의 안정적 생존 전략이 시장 직접 대응 경험을 차단하면서 브랜드화가 전략이 아닌 위협으로 인식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사례처럼 기업이 성장 단계에 맞춰 자연스럽게 브랜드로 이동할 수 있도록 유통, 마케팅, 리스크 분담을 뒷받침하는 ‘산업 단위의 전환 시스템’ 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2025 부산국제기계대전 현장 모습으로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벡스코)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제품 경쟁력에 대한 설명은 길고 정교하지만, 브랜드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말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우리는 그런 단계가 아니다”라는 표현으로 대화를 정리해 버린다. 기술력과 생산성에 대한 자신감은 분명한데, 시장에서 이름으로 팔리는 구조로 넘어가는 문제 앞에서는 스스로 선을 긋는 모습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보수적 경영 태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형성된 산업 구조가 만들어낸 집단적 인식에 가깝다.


한국 제조 중소기업의 성장 경로는 대부분 하청 구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대기업 또는 글로벌 브랜드의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생존 전략이었고, 실제로 이 경로를 통해 축적된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문제는 이 구조 속에서 기업의 목표가 “납품 물량 유지”로 고정되면서 시장을 직접 상대하는 경험 자체가 축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브랜드는 시장과의 반복 접촉 속에서 형성되는데, 한국의 많은 제조 중소기업은 최종 소비자를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이 구조에서는 브랜드가 전략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통 조직을 구축해야 하고, 마케팅 비용을 감당해야 하며, 재고와 가격 변동을 직접 책임져야 한다. 납품 구조에서는 발생하지 않던 변수들이 한꺼번에 기업의 부담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결국 대표들은 기술 투자에는 적극적이면서도 브랜드 전환에는 소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두려움의 대상은 브랜드가 아니라 구조 전환의 비용이다.


대만의 경우 같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반에서 출발했지만 이 인식의 경로가 달랐다. 대만 정부와 산업 플랫폼은 제조기업이 일정 수준의 기술 축적 단계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자체 브랜드로 이동하도록 단계별 시장을 설계했다. 초기에는 글로벌 브랜드의 생산 파트너로 참여하지만, 중간 단계에서는 공동 브랜드관을 통해 제품을 직접 전시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개별 브랜드로 독립하는 구조다. 기업이 혼자 결심해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 시스템이 전환 시점을 만들어 주는 방식이다.


◆ 대표적인 사례가 자전거 산업이다


대만의 Giant(자이언트)는 원래 글로벌 브랜드의 생산업체였지만 산업 클러스터 안에서 연구개발, 부품 공급망, 글로벌 유통망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자체 브랜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감당해야 할 위험은 산업이 분산해서 흡수했고, 브랜드 전환은 모험이 아니라 성장 단계의 일부가 되었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모든 전환 비용을 단독으로 감당해야 한다.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유통·마케팅 조직을 동시에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지원하는 산업 단위의 전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조차 납품 구조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 버린다.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브랜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전환에 필요한 구조가 없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기업가 정신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대표들은 “우리 제품이 우리 이름으로 팔리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 조사, 유통 연결, 해외 테스트베드, 공동 브랜드 플랫폼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브랜드 전환은 생존을 위협하는 선택이 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왜 한국 제조 중소기업에게 브랜드는 전략이 아니라 부담이 되었는가. 그리고 왜 대만의 제조 중소기업에게 브랜드는 성장의 다음 단계로 인식되는가. 이 차이는 기업의 역량이 아니라 산업 설계 방식에서 발생한다.


대만은 생산 이후의 시장 단계를 국가와 산업이 함께 만들었고, 한국은 생산 이전 단계까지를 지원하는 정책에 머물러 있었다. 브랜드에 대한 인식 차이는 바로 이 구조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지금 한국 제조 중소기업 정책이 다시 설계되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 교육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로 이동할 수 있는 산업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 유통망, 산업 단위 글로벌 전시 플랫폼, 해외 테스트 마켓이 연결될 때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 브랜드는 결심의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는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있을 때 만들어진다.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브랜드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브랜드로 이동할 수 있는 산업 경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 코너 │ 제조 중소기업 브랜드 전환 조건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 자체 브랜드 전환 단계 설계
공동 유통 플랫폼 구축
산업 단위 글로벌 전시 시스템
해외 테스트베드 운영
생산·연구개발·마케팅 기능 분산 구조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저작권자ⓒ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경훈 대기자

오늘의 이슈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