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대만은 왜 글로벌 D2C(소비자직접판매) 실험을 먼저 했는가

김경훈 대기자 / 기사승인 : 2025-05-27 14:35:44
  • -
  • +
  • 인쇄
가격을 협상하는 구조가 아니라 가격을 설계하는 구조의 탄생
▲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겪는 만성적인 저단가 구조는 기술력의 부재가 아닌, 시장과 직접 연결되지 못하는 ‘단절된 유통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제기되었습니다. 제품이 공장을 떠나는 순간 가격 결정권을 상실하는 현재의 납품형 수출 방식은 데이터 축적을 가로막고 브랜드 성장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TAITRA(대외무역발전협회) 사례처럼 중소기업이 직접 판매 주체가 되어 시장 데이터를 확보하고 가격을 설계할 수 있는 ‘산업 단위 공동 판매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pexels)

 

한국의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제품은 자신 있는데 가격이 안 맞는다”는 이야기다. 기술력은 이미 글로벌 수준에 올라와 있고 품질 테스트에서도 문제가 없는데 막상 수출 협상 단계에 들어가면 단가를 맞추지 못해 거래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가격 경쟁력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에 가깝다.


국내 제조 중소기업의 수출 경로를 따라가 보면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수출상이나 해외 바이어에게 납품되는 순간 기업의 손을 떠난다. 그 다음 단계부터는 현지 도매상, 온라인 유통업체, 리테일 채널을 거치면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정작 제품을 만든 기업은 최종 소비자가 얼마에 제품을 구매하는지 알지 못한 채 다음 생산에 들어간다. 가격은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만 기업은 그 시장 바깥에 서 있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는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가격을 올릴 수 없다. 브랜드가 없어서가 아니라 가격을 실험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에서 어떤 가격대가 가장 잘 팔리는지, 어떤 구성으로 묶었을 때 재구매가 발생하는지, 할인 없이 판매가 유지되는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기업 내부에 남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항상 협상의 결과가 되고, 협상은 결국 단가 인하로 끝난다.


대만 중소기업이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제품을 해외로 보내기 전에 판매 구조를 해외 시장 안에 먼저 만들었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물류·고객응대·반품·현지 재고 운영 같은 고정비를 산업 단위 공동 시스템으로 처리하면서 제조기업이 직접 판매 주체로 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이 구조가 작동하는 순간 기업의 위치가 바뀐다. 납품 기업이 아니라 판매 기업이 된다. 가격을 제시하는 쪽이 아니라 가격을 설계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대만 기업들이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제품을 올려놓고 주문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하고, 리뷰 데이터를 분석하고, 광고 효율과 재구매율을 동시에 보면서 가격을 조정한다. 가격은 협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 실제 현장에서 확인되는 차이는 숫자로 드러난다  


같은 제품이 한국에서는 1만5천 원의 납품단가로 거래되지만 해외 소비자에게는 6만 원에서 7만 원 사이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기업은 이 차이를 유통 마진으로 이해하지만 대만 기업은 운영 구조와 데이터 축적의 결과로 해석한다. 판매 데이터를 직접 확보한 기업만이 다음 제품에서도 같은 가격 구조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산업기술연구원(ITRI, 공업기술연구원)과 대외무역발전협회(TAITRA, 대만무역진흥기구)다. ITRI는 개별 기업의 연구소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선행 개발하고, TAITRA는 전시회를 단순 홍보 행사가 아니라 실제 계약과 연결되는 판매 플랫폼으로 운영한다. 여기에 공공 물류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중소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직접 판매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반면 한국의 디지털 전환은 판매 구조를 바꾸기보다 입점 구조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플랫폼에 들어가는 기업은 많아졌지만 플랫폼 안에서 공급자로 남는 구조였기 때문에 수수료가 올라갈수록 기업의 수익은 줄어들었고, 판매 데이터는 플랫폼에 축적됐다. 디지털화는 되었지만 가격결정권은 이동하지 않았다.


결국 대만이 먼저 만든 것은 전자상거래가 아니라 시장 내부에 들어가는 통로였다. 제조기업이 공장 밖에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앞에서 가격표를 붙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유통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이어진다.


가격을 직접 결정하는 기업이 늘어나면 그 기업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고, 브랜드가 생기면 금융 구조가 바뀌고, 금융 구조가 바뀌면 고용 구조가 바뀐다. 대만 청년들이 중소기업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설명된다. 기업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중소기업 정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가가 아니다. 기업이 직접 판매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납품 기업으로 남게 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가격은 제품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대만 중소기업이 강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정보 코너 │ 대만 중소기업 D2C 구조 핵심 장치

산업기술연구원(ITRI, 공업기술연구원)
산업 공통 핵심 기술 선행 개발 후 기업 이전 → 기술 개발 시간 단축
대외무역발전협회(TAITRA, 대만무역진흥기구)
전시 + 바이어 매칭 + 수출 계약 연계 → 중소기업 직접 수출 비중 확대
공공 해외 물류 공동 운영 시스템
배송·반품·현지 재고 통합 관리 → 제조기업 직접 판매 가능
글로벌 전자상거래 공동 진출 프로그램
아마존(Amazon,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쇼피(Shopee, 동남아 전자상거래 플랫폼)
→ 판매 데이터 기업 내부 축적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저작권자ⓒ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경훈 대기자

오늘의 이슈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