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분석] 폐업 후 재취업률 22%… “가게 접어도 갈 곳이 없다” 자영업 출구 전략의 부재

이경희 기자 / 기사승인 : 2026-05-14 11: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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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폐업 소상공인 98만 명 중 재취업 성공은 21만 6,000명(22.0%), 나머지는 실업 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
▶ 폐업 후 평균 실업 기간 14.7개월, 재취업 시 이전 소득 대비 평균 43% 하락
▶ 50대 이상 폐업자 재취업률 14.3%, 연령대별 격차 심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폐업 후 구직 활동 중인 한 전직 자영업자가 도심 공원 벤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 제미나이)

 

 

◇ 가게 문을 닫으면 시작되는 ‘제2의 위기’
“10년간 식당을 했는데, 닫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이력서에 뭘 쓸지도 모르겠고, 나이도 많고…” 서울 중랑구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다 지난해 12월 폐업한 이모 씨(53)의 말이다. 2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든 그는 식당, 호프집, 카페 등 세 번의 창업과 세 번의 폐업을 경험했다. 마지막 가게를 접은 후 5개월째 구직 활동을 하고 있지만, 면접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이 씨의 사례는 폐업 소상공인이 직면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통계청이 공동으로 발표한 ’2025년 소상공인 폐업 후 경제활동 추적 조사’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소상공인은 약 98만 명이다. 이 가운데 1년 이내에 재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22.0%(약 21만 6,0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8%는 어디에 있을까. 실업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비율이 34.2%,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가 28.4%, 재창업을 시도 중인 비율이 15.4%였다. 재창업 시도자 중 실제로 1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비율은 38%에 불과해, 재창업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 경력 단절, 연령 장벽, 기술 부재의 삼중고
폐업 소상공인의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자영업 경력이 취업 시장에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폐업 소상공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영업 경력이 취업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는 응답이 67.8%로 압도적이었다.


인천에서 인테리어 시공업을 하다 폐업한 박모 씨(47)는 “15년간 인테리어 일을 했으니 관련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회사에서는 ’사업자 경력은 경력으로 안 친다’고 하더라”며 “결국 경비원 자리라도 알아보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둘째, 연령 장벽이다. 폐업 소상공인의 평균 연령은 48.7세로, 취업 시장에서 가장 불리한 연령대에 해당한다. 특히 50대 이상의 재취업률은 14.3%로, 30대(38.2%)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50대 폐업 소상공인이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이전 자영업 소득 대비 평균 52%가 하락한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디지털 기술과 전문 자격증 등 취업에 필요한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자영업에 종사하면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쌓았더라도, 그것이 취업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역량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실업급여 사각지대, 소상공인은 ‘무방비’
자영업자의 고용 안전망도 심각하게 취약하다. 근로자는 실직 시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은 임의 가입 방식으로, 가입률이 극히 낮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자는 약 32만 명으로, 전체 자영업자(약 570만 명)의 5.6%에 불과하다. 나머지 94.4%의 자영업자는 폐업 시 어떠한 소득 보전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자영업자 고용보험의 가입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월 매출이 빠듯한 소상공인에게 매월 수만~수십만 원의 보험료는 부담이 크다”며 “또한 자영업자 실업급여의 수급 조건이 까다로워, 폐업 사유가 ’비자발적’이어야 하는 등 실제로 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고용센터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폐업 소상공인. (사진 = 제미나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폐업 소상공인들은 빠르게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폐업 후 1년 이내에 가구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빈곤선)로 떨어지는 비율은 전체 폐업 소상공인의 23.7%에 달했다. 사실상 4명 중 1명이 폐업과 동시에 빈곤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다.


◇ 심리적 충격과 사회적 고립
폐업의 후유증은 경제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가게를 접은 후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경험하는 전직 소상공인이 적지 않다. 한국중소기업학회가 폐업 소상공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폐업 후 심리 건강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54.2%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31.8%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대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다 올해 2월 폐업한 정모 씨(56)는 “20년 넘게 미용실을 했으니까 내 정체성 자체가 ’미용실 사장’이었다”며 “가게 문을 닫은 뒤로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졌다. ’요즘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가장 듣기 싫다”고 고백했다.


자영업자들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주로 사업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를 심화시킨다. 거래처, 단골손님, 같은 상권의 동료 자영업자 등 사업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가 폐업과 함께 대부분 소멸되면서, 전직 소상공인은 사회적 고립에 빠지기 쉽다.


한국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2025년 자영업자·전직 자영업자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4명으로, 전체 평균(23.6명)보다 33% 높았다. 폐업 후 1년 이내 자살 시도율은 일반 실업자의 2.1배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 출구 전략이 없는 나라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영업 정책이 ’진입’에만 초점을 맞추고 ’퇴장’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는 점을 핵심 문제로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영진 연구위원은 “선진국에서는 사업 실패를 일종의 ‘학습 경험’으로 보고,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일본의 ’재취직 지원 급부금’, 독일의 ‘그뤼둥스추스(창업 보조금 겸 전직 지원)’ 등을 참고해 폐업 소상공인을 위한 체계적인 전직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재도전 장려금’은 폐업 소상공인에게 최대 200만 원의 생활 안정 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의 수급률은 8.7%에 불과하다. 폐업 소상공인의 대부분이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복잡한 서류 절차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희망 리턴 패키지’는 폐업 예정자나 폐업자를 대상으로 취업·전직 교육, 심리 상담,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하는 종합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연간 수혜 인원이 2만 명 수준으로,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폐업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임현정 교수는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이지만, 자영업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거의 전무하다”며 “자영업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폐업 후 최소 6개월간 생활비를 보장하는 ‘전직 지원금’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희망 리턴 패키지의 수혜 대상을 연 5만 명으로 확대하고, 재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며 “특히 50대 이상 폐업자를 위한 맞춤형 전직 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지역 중소기업과의 취업 매칭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석 상근부회장은 “소상공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얼마나 많이 창업하느냐’에서 ’얼마나 잘 퇴장하고 재기하느냐’로 전환해야 한다”며 “폐업을 실패가 아닌 전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게 문을 닫는 순간, 소상공인은 또 다른 절벽 앞에 선다. 경력도, 안전망도, 갈 곳도 없는 막막한 현실이다.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소상공인이 폐업하는 나라에서, 출구 전략의 부재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다. ’가게를 접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당연한 명제가 현실이 되려면,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소상공인포커스 / 이경희 기자 leegh0224@biz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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