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분석] 우리나라 역대 중소기업 지원정책에서 간과한 점

김경훈 대기자 / 기사승인 : 2026-01-06 15: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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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원에서 산업구조 설계 중심으로 전환해야 새로운 단계로 진입
▲ 한국 제조업은 우수한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안착했지만, 가격 결정권을 쥔 브랜드 기업에 부가가치가 집중되는 구조 탓에 기술의 축적이 시장 지배력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사진=한국신업기술진흥원 공식 블로그 갈무리)

 

 

한국 산업 정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지원’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하며 수출 활동을 지원한다. 이러한 정책은 분명 기업 활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산업 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오랜 기간 다양한 지원 정책이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산업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는 문제라기보다 산업 정책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산업 정책의 본질은 기업을 지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어떤 시장에 진입하고 어떤 공급망 속에서 경쟁하며 어떤 방식으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지가 결국 산업 정책의 방향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 제조업은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 경쟁력을 가진 산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반도체 산업과 자동차 산업, 전자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과 생산 능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력은 대부분 대기업 중심 구조에서 형성된 경우가 많다. 중소 제조 기업의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생산 기술과 품질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브랜드와 시장을 직접 지배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제조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 ODM(제조업자개발생산) 방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OEM과 ODM 구조는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생산 기술을 축적하는 데에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다. 실제로 많은 한국 제조 기업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이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OEM과 ODM 구조에서는 브랜드 기업이 시장과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산 기업은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통해 공급망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시장 구조를 직접 설계하기는 어렵다. 결국 기업은 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경쟁하지만 시장에서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이게 된다.


가격 결정권은 산업 경쟁력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제품의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서지 못하면 기업은 시장에서 제한적인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글로벌 브랜드가 가격을 결정하고 생산 기업이 납품 가격을 따라가는 구조에서는 산업 전체의 부가가치 역시 브랜드 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구 섬유 산업은 이러한 한국 제조업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대구는 오랜 기간 한국 섬유 산업의 중심 지역으로 성장해 왔으며 섬유 생산과 염색, 가공 기술이 축적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왔다. 특히 염색 산업은 섬유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공정으로 평가된다. 원단의 품질과 색상 안정성은 염색 공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기술은 오랜 경험과 기술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


대구 염색 산업단지에는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기업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일염직이다. 우일염직은 대구 서구 염색공단에 위치한 섬유 염색 가공 기업으로 오랜 기간 기술을 축적하며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기업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일염직을 이끌고 있는 박종철 대표이사는 대구 섬유 산업 현장에서 오랜 기간 기업 경영을 이어 온 경영인이다. 그는 염색 산업이 단순한 가공 공정이 아니라 섬유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우일염직은 OEM과 ODM 방식으로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제조업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생산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구조는 한국 제조업이 가진 중요한 강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동시에 산업 정책의 한계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기술을 축적한 기업은 존재하지만 그 기술이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책과 시장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만 산업 정책은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비교 사례가 된다. 대만은 중소기업을 단순히 지원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산업 생태계 속에서 중소기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정책적으로 설계했다. 이러한 정책은 산업 클러스터와 공급망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기업 지원 정책과 산업 전략이 함께 설계되는 구조를 형성했다.


대만의 산업 구조는 중소기업 중심 산업 구조로 잘 알려져 있다. 대만 전체 기업 가운데 약 98%가 중소기업이며 이들 기업이 전체 고용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대만 제조업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면서 산업 경쟁력을 형성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 지원 정책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정책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한국 산업 정책 역시 이제는 이러한 방향을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기업 지원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지원의 규모가 아니라 산업 구조다. 기업이 어떤 시장에 참여하고 어떤 공급망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지가 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 제조업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산업 정책이 기업 지원 중심 정책에서 산업 구조 설계 중심 정책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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