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바이오 산업은 왜 기술을 완성하지 못하는가

서영현 기자 / 기사승인 : 2025-09-29 16: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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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부족이 아니라 구조와 책임의 문제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구조가 문제다" 바이오 자본 부족설의 실체
미국·유럽은 왜 다른가? 연구와 경영, 자본이 철저히 분리된 생태계
▲ 국내 바이오 산업이 겪는 고질적인 정체 원인을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닌, 연구와 경영의 역할 혼선, 그리고 단기 회수에 매몰된 '자본 구조'의 모순에서 찾을 수 있다. 연구자가 경영과 투자 대응까지 도맡아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와 검증보다 기대를 앞세우는 투자 관행이 지속되는 한, 아무리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도 기술의 최종 완성이라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해 코엑스에서 열린 'CPHI/Hi Korea 2025' 전시회 모습으로,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사진=cphikorea)

 

 

바이오 산업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늘 자본 부족이다. 임상 단계에 들어가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연구개발 기간이 길기 때문에 추가 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술을 끝까지 완성하기 어렵다는 설명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겉으로 보면 이 말은 상당 부분 사실처럼 들린다. 실제로 신약 개발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임상 단계에서 요구되는 비용 역시 다른 산업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 산업의 흐름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단순히 자본이 부족해서 기술이 멈춘다고 말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국내 바이오 산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자금 조달 기회가 적은 산업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 자금과 민간 투자, 각종 연구개발 지원 프로그램, 기술 특례 상장 제도와 같은 자본 시장 접근 통로까지 고려하면 초기 단계에서 외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기회는 비교적 넓게 열려 있는 편에 가깝다. 문제는 자본의 양보다 자본이 산업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자본은 들어오지만 기술을 끝까지 완성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연구를 지속시키기보다 연구의 방향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반복된다. 그래서 핵심은 자본 부족이 아니라 자본 구조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 바이오 도덕적 해이의 구조적 배경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연구개발자의 위치부터 봐야 한다. 국내 바이오 산업에서는 연구자가 동시에 교수이기도 하고 의사이기도 하며 또 기업의 대표이기도 한 경우가 흔하다. 한 사람 안에 연구자, 의료인, 교육자, 경영자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구조다. 겉으로 보면 전문성이 결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할이 분산되는 구조다. 연구는 긴 시간 동안 한 가지 문제를 반복적으로 검증하고 데이터로 축적해야 하는 영역이다. 반면 기업 경영은 자본과 조직을 관리하고 시장 기대에 대응해야 하는 영역이며 의료 현장은 또 다른 책임과 시간을 요구한다. 이 세 역할이 동시에 움직이면 어느 하나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역할이 겹치는 구조는 결국 연구의 질과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자는 기술을 완성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기업 설명과 투자 대응, 대외 메시지 관리에 쓰게 된다. 연구실 안에서 데이터를 쌓는 시간보다 발표 자료를 만들고 기사와 홍보 문구를 검토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기술의 완성도는 자연스럽게 밀릴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자가 기술을 지키는 사람에서 기술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 산업의 중심축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본 구조가 개입한다. 국내 바이오 산업에서 유입되는 투자 중 상당 부분은 RCPS(상환전환우선주) 형태로 이루어진다. 상환전환우선주는 투자자에게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와 일정 조건에서 원금 회수를 요구할 수 있는 성격을 동시에 부여하는 구조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하방 위험을 줄이고 상방 가능성은 열어두는 방식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일정 시점 이후 투자자의 기대와 회수 압력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 구조에서는 연구개발이 충분히 검증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보다 다음 투자, 다음 상장, 다음 이벤트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먼저 중요해질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도 임상 단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자금이 소진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자금이 소진된 이후의 태도다. 객관적인 외부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내부에서는 기술이 거의 완성되었다거나 다음 투자만 확보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연구자는 자신의 기술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가장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외부의 객관적 검증 시스템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으면 이 낙관은 곧 시장 메시지가 되고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실질적 완성도보다 내부 확신이 앞서가고, 그 확신이 자본을 다시 끌어오는 구조가 반복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객관성이 무너지기 쉽다. 연구의 기준은 본래 데이터와 검증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대와 설명, 외부 메시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생긴다. 연구자는 데이터를 더 쌓기보다 시장이 원하는 문장을 먼저 내놓게 되고, 기업은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기보다 투자자와 시장을 설득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 연구보다 홍보가 앞서고 검증보다 과시가 앞서는 흐름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 단순히 몇몇 기업의 윤리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구조가 그렇게 사람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도 이 구조 안에서 생긴다. 자기 자본을 걸고 장기간 연구를 밀어붙이는 구조와 외부 자금으로 빠르게 기업을 확대하는 구조는 책임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실패의 비용이 직접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자본 시장과 투자자에게 넓게 분산되는 구조에서는 의사결정이 단기화되기 쉽다. 연구개발자는 기술을 끝까지 완성해야 할 책임을 지기보다 다음 자금 조달과 다음 이벤트를 관리해야 하는 위치로 이동하고, 기업은 기술 축적보다 외형 확장을 우선하게 된다. 그 결과 회사는 어느 순간 거래 정지나 기능 상실 상태로 들어가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는다. 기술은 축적되지 못한 채 중단되고 산업 내부에는 남는 것이 적어진다.


핵심 기술이 충분한 축적 이전에 해외로 이전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기술이전 자체는 산업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하고 외부 파트너와 공동 개발을 하는 것은 바이오 산업에서 흔한 구조다. 문제는 기술이전이 기술 축적 이후의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자금 압박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 처방이 될 때다. 이 경우 기술이전은 산업 확장이 아니라 산업 내부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내부에서 끝까지 완성되지 못한 기술이 외부로 나가고, 국내 산업에는 경험과 자산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면 같은 출발이 반복될 뿐 끝이 남지 않는다.


이 구조가 왜 더 심각한가 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 단계에서 기대가 형성되고 기술 특례 상장으로 시장에 들어가고 이후 기대 조정과 기업 가치 하락을 겪는 흐름이 다음 기업에서도 다시 반복된다. 실패는 개별 기업의 문제로 처리되고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산업 전체는 성장보다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자본은 계속 투입되지만 기술은 산업 내부에 남지 않고, 연구자 역시 장기 축적보다 단기 생존과 이벤트 대응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문제는 특정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동일한 구조가 만들어내는 반복이다.


이 지점에서 해외 사례를 보면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대형 제약 산업과 바이오 생태계는 연구, 자본, 경영의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연구자는 임상 데이터와 기술 검증에 집중하고, 경영진은 자본과 시장 전략을 담당하며, 투자자는 단계별 성과를 기준으로 자금을 집행한다. 특히 임상 단계별로 자금이 나뉘어 들어가고 기술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기술이 자본을 끌어들이는 구조가 형성된다. 상장은 중요하지만 유일한 회수 수단이 아니고, 인수합병과 공동 개발, 단계별 라이선스 계약이 활발하기 때문에 기술 검증 이전에 무리하게 시장에 노출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제약 산업도 비슷한 점이 있다. 대학 연구소와 공공 연구기관, 제약 기업 사이의 협업이 활발하지만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연구자는 장기간 같은 분야를 축적할 수 있고 기업은 그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입한다. 연구가 먼저 깊어지고 자본은 그 뒤를 따라간다. 이 구조에서는 연구개발자가 연구보다 홍보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고, 기술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 축적의 결과로 취급된다.


반면 국내 바이오 산업은 자본이 먼저 움직이고 기술이 그 기대를 따라가야 하는 구조가 강하다. 기술은 아직 검증 중인데 자본은 이미 회수를 고민하고, 연구는 아직 축적 중인데 시장은 이미 상장 이후의 설명을 요구한다. 역할은 겹치고 검증은 충분히 분리되지 않으며 책임은 분산된다. 이 상태에서는 기술이 완성되기보다 기술이 소비된다. 오빠가 지적한 것처럼, 바이오는 늘 자본 부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곧 구조와 책임의 불일치가 반복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왜 반도체와 전자 산업은 세계적 기업을 만들었는데 바이오는 같은 길을 가지 못하는가.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을 다루는 태도와 산업 구조다. 반도체와 전자 산업에서는 기술이 곧 결과로 증명된다. 수율과 성능, 양산 능력이 바로 경쟁력으로 연결되고 실패는 즉시 수정과 개선으로 이어진다. 반면 바이오는 결과 이전 단계에서 기대와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기술의 완성보다 기술의 설명이 앞서기 쉬운 구조에서는 세계 경쟁보다 국내 기대 관리가 먼저 작동하게 된다. 기술이 아닌 해석이 산업을 끌고 가는 순간, 기술은 끝까지 도달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연구개발자의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 연구는 연구에 집중하고 경영과 자본 관리는 별도의 전문 구조가 맡는 체계가 필요하다. 교수, 의사, 연구자, 대표를 한 사람이 동시에 맡는 구조에서는 기술 완성 확률이 높아지기 어렵다. 둘째, RCPS(상환전환우선주) 중심의 투자 구조를 포함해 단계별 검증에 맞춘 자본 투입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기술 축적 이전에 과도한 자금이 들어오고 그 자금이 다시 회수 압박으로 돌아오는 구조에서는 연구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외부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내부 확신이 아니라 임상 데이터와 독립적 검증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기술이 완성되었다는 판단은 반드시 외부의 객관적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넷째, 기술이전 역시 자금 회수 수단이 아니라 산업 축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바이오 산업은 기술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기술이 끝까지 완성될 수 있는지는 연구자의 개인 역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연구자가 어떤 구조 안에서 일하고, 자본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며, 검증과 책임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가 결과를 결정한다. 자본이 기술을 기다리지 않고 기술이 자본을 따라가야 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많은 자금이 투입되더라도 기술은 끝까지 도달하기 어렵다. 바이오 산업은 자본이 부족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구조와 책임이 기술의 완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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