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경력 활어 장인의 ‘한 눈에 보고 등급 매기는’ 안목, 수산시장 위판가의 기준이 되다
▶ 시장 위판가의 약 12%가 김 장인 등 5~6명의 ’눈대중’으로 결정되는 노량진 위판의 비공식 시스템
▶ 후계자 부족, 디지털 위판 확산… “사라지면 다시 못 만드는 손맛”, 전통과 변화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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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새벽 4시 수조에서 활어를 꺼내 등급을 가늠하는 30년 경력의 활어 장인. (사진 = 제미나이) |
◇ “활어는 30초 안에 다 본다”
오전 4시 12분, 노량진 수산시장 3층 활어 매장. 김광철 씨(56)는 손에 든 광어 한 마리를 살피며 30초쯤 가만히 들여다본다. 등판의 색감, 지느러미의 움직임, 입의 벌어짐 정도, 손에 전해지는 무게감. 30초 후 그는 옆 직원에게 “이건 특, 저쪽 수조로”라고 짧게 말한다.
“활어는 30초 안에 다 본다. 30년 했으니까”라는 그의 말은 자랑이 아니다. 사실 진술이다. 김 씨는 1996년 19세에 노량진 시장에 입문해, 30년간 한자리에서 활어를 다뤄온 ’활어 장인’이다.
새벽 3시에 출근해 새벽 6시까지 약 3시간 동안 그가 다루는 활어는 1톤이 넘는다. 광어, 우럭, 도미, 농어, 가자미가 매일 수조에 새로 들어오고, 그의 손을 거쳐 등급이 매겨지고 손님 매대에 진열된다.
“오늘 잡힌 거랑 어제 잡힌 거, 활어가 1톤이면 등급이 다 다르다. 잡은 시간, 운반 시간, 수조 적응 시간 따라 가격이 마리당 5,000원에서 1만 원까지 차이가 난다. 그 차이를 잡는 게 우리 일”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 손가락 굳은살이 ‘훈장’
김 씨의 손가락은 굳은살 투성이다. 30년간 매일 새벽 활어를 다루며 생긴 흔적이다. 특히 엄지와 검지의 안쪽은 살결이 다 닳고 굳어 마치 가죽 같다. 그의 손바닥에는 어망·칼·갈고리에 베인 흉터가 셀 수 없이 많다.
“손가락이 굳어야 활어가 보인다. 살결이 부드러우면 활어가 미끄러져 잡히질 않고, 미끄러지면 활어가 다친다. 활어가 다치면 등급이 떨어진다”는 그의 말은 노량진 어시장의 30년 노하우를 압축한 한 줄이다.
활어 다루기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종합 예술이다. 활어의 종, 크기, 활력, 색깔, 비늘 상태를 한눈에 판별하고, 그에 맞는 손동작으로 다뤄야 한다. 너무 약하게 잡으면 활어가 빠져나가고, 너무 세게 잡으면 활어가 상한다. 그 미세한 강도 조절은 오로지 손의 감각에 달려 있다.
◇ 시장 위판가의 12%, ’눈대중’이 결정한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일일 거래량은 평균 230톤, 거래액은 약 18억 원이다. 이 중 약 12%, 금액으로 2억 1,600만 원의 위판가가 김 씨를 포함한 5~6명의 ’눈대중 장인’들의 평가로 결정된다.
공식적인 어시장 위판은 경매 시스템과 디지털 가격 책정 시스템을 따른다. 그러나 활어, 특히 고가 활어의 경우 ’눈대중’을 통한 등급 평가가 여전히 핵심이다. 활어의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같은 광어라도 새벽 4시와 오전 7시의 상태가 다르고, 가격도 달라진다.
노량진 수산시장상인회 한지욱 사무국장은 “활어 등급 평가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30년 경력자의 손감각, 직관, 경험이 결정적이다. 김 씨 같은 장인들이 사실상 시장 가격의 일부를 결정하는 ‘비공식 가격 결정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20년 후에는 누가 활어를 다룰까”
김 씨에게도 고민은 깊다.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의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막내 직원은 35세인데, 5년째 일하고 있지만 아직 등급 판별까지는 어렵다. “이게 빨라야 10년, 보통 15~20년 해야 보인다”는 그의 말이다.
노량진 시장 전체로 보면 활어 관련 종사자의 평균 나이는 58.7세다. 신규 진입 청년 인력은 거의 없다. 새벽 노동, 저임금, 신체 노동이라는 3대 기피 요인이 작용한다.
한국수산경영학회 박재훈 연구위원은 “수산시장의 핵심 인력 고령화는 한국 수산물 유통의 미래에 큰 위협이다. 활어 등급 판별 같은 암묵지가 한 세대가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노동 환경 개선과 임금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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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새벽 손님과 활어를 두고 직접 거래하는 노량진 장인의 일상. (사진 = 제미나이) |
◇ AI 시대, ’아날로그 손맛’의 가치
수산물 유통 분야에도 AI·디지털 혁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수산물 등급 판별 AI, 자동 분류 시스템, 디지털 위판 플랫폼이 도입되면서, ’아날로그 손맛’의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김 씨의 생각은 다르다. “AI가 사진 보고 등급 매긴다는데, 활어는 5분만 지나도 상태가 변한다. AI가 그걸 어떻게 따라잡겠나.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아야 진짜 등급이 나온다”는 그의 단언이다.
한국수산회 정재웅 회장은 “AI는 보조 도구로서 가치가 크지만, 활어 같은 생물 유통의 핵심은 여전히 사람의 감각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모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 “사라지면 다시 못 만드는 손맛”
김 씨의 하루는 새벽 3시 출근, 점심 후 잠시 휴식, 오후 6시 퇴근으로 이어진다. 그가 받는 월급은 약 380만 원. 30년 경력에 비하면 결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내가 노량진 시장에서 활어를 다루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며 입을 닫는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강지영 교수는 “장인의 손맛은 한국 음식 문화의 무형 자산이다. 수산시장의 활어 다루기 노하우는 30년 이상의 시간이 만든 ’암묵지’다. 이것이 사라지면 다시 만들 수 없다. 사회적 인식 제고와 함께 장인 등록제, 명예 수당, 교육 프로그램 등 보존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황민욱 연구위원은 “한국 자영업·전통 직업의 위기는 단순한 산업 구조조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무형 자산’이 소실되는 문제다. 활어 장인 김 씨 같은 인물의 노하우를 영상·기록으로 아카이브화하고,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사회적 인정·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새벽 4시의 수산시장은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간에 가장 활발하다. 그곳에는 30년 굳은살이 된 손과,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감각이 살아 있다. 김 씨가 매일 새벽 다루는 1톤의 활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한국 어시장의 30년 역사이자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이경희 기자 leegh0224@biz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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