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지원의 규모가 아닌 산업구조

김경훈 대기자 / 기사승인 : 2026-01-08 17: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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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어떤 시장에 참여하고 어떤 공급망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지가 산업의 미래를 결정
▲ 한국 산업 정책은 오랜 기간 개별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지원'에 집중해 왔으나, 이제는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의 판을 짜고 공급망 내 지위를 결정하는 '구조 설계'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 산업 정책은 오랜 기간 기업 지원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마련하고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며 수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러한 정책은 분명 기업 활동에 일정한 도움을 준다. 그러나 산업 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왜 이러한 지원 정책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산업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산업 정책은 단순히 기업을 돕는 정책이 아니다. 산업 정책은 산업 구조를 설계하는 정책이다. 기업이 어떤 시장에 진입하고 어떤 공급망 속에서 경쟁하며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산업 정책의 역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산업 정책은 단순한 지원 사업의 집합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형성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산업 정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책이 구조 설계보다는 예산 집행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정책의 성과는 산업 구조의 변화보다는 지원 기업 수나 집행된 예산 규모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은 행정적으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산업 정책이라는 관점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산업 경쟁력은 예산 규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술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정부는 오랜 기간 연구개발 지원 정책을 통해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연구개발 정책은 분명 기업의 기술 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술 개발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장 구조와 공급망 구조가 함께 형성되어야 한다. 기술 개발만으로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산업 정책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Technology Push(기술 중심 정책)와 Market Pull(시장 수요 중심 정책)이다. Technology Push 정책은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방식이다. 반면 Market Pull 정책은 시장 수요와 산업 구조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한국 산업 정책은 오랜 기간 기술 중심 정책에 가까운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정책 접근 방식은 Technology Push(기술 중심 정책)라고 불리는 방식과 유사하다. Technology Push 정책은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그 기술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설계된다. 이러한 방식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시장 구조와 연결되지 않을 경우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Market Pull(시장 수요 중심 정책)은 시장 구조와 산업 생태계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필요하며 어떤 산업 구조가 형성되어야 하는지를 먼저 분석하고 그 구조 속에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업 지원 정책보다 산업 구조 설계에 더 가까운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제조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제조업은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 기계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력은 대부분 대기업 중심 구조에서 형성된 경우가 많다.


중소 제조 기업의 경우 상황은 조금 다르다. 많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지만 브랜드와 시장을 직접 지배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기술 경쟁력이 존재하더라도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기업은 생산 기술을 기반으로 경쟁하지만 시장 구조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


대구 섬유 산업은 이러한 한국 제조업 구조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대구는 오랜 기간 한국 섬유 산업의 중심 지역으로 성장해 왔으며 섬유 생산과 염색, 가공 기술이 축적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왔다. 특히 염색 산업은 섬유 산업에서 핵심적인 공정으로 평가된다. 원단의 품질과 색상 안정성은 염색 공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기술은 오랜 경험과 기술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


대구 염색 산업단지에는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일염직이다. 우일염직은 대구 서구 염색공단에 위치한 섬유 염색 가공 기업으로 오랜 기간 기술을 축적하며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기업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일염직을 이끌고 있는 박종철 대표이사는 대구 섬유 산업 현장에서 오랜 기간 기업 경영을 이어 온 경영인이다. 그는 염색 산업이 단순한 가공 공정이 아니라 섬유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업의 기술 경쟁력 유지에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우일염직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 ODM(제조업자개발생산) 방식으로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제조업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생산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구조는 한국 제조업이 가진 중요한 강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동시에 한 가지 한계를 보여 준다. 생산 기술은 존재하지만 시장 구조를 설계하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산업 전체가 시장을 설계하는 구조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오늘날 제조업 경쟁력은 단순히 생산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글로벌 산업 구조는 이미 복잡한 공급망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있으며 기업은 이러한 공급망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며 경쟁력을 확보한다. 반도체 산업과 전자 산업, 자동차 산업 등 대부분의 제조업은 다층적인 공급망 구조 속에서 운영된다. 기업은 원재료 공급 기업, 부품 기업, 완제품 기업, 브랜드 기업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러한 역할에 따라 산업 구조 속에서의 위치가 결정된다.

 

대만 산업 정책은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비교 사례가 된다. 대만은 중소기업을 단순히 지원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산업 생태계 속에서 중소기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정책적으로 설계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 지원 정책과 산업 전략을 동시에 설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산업 정책 역시 이제는 이러한 방향을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기업 지원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지원의 규모가 아니라 산업 구조다. 기업이 어떤 시장에 참여하고 어떤 공급망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지가 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 산업 정책이 단순한 지원 정책에서 산업 구조 설계 정책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산업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은 기업 지원 사업의 반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산업 클러스터와 공급망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개별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조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정책적으로 설계해야 한다.산업 정책이 예산 중심 정책에서 산업 구조 중심 정책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기술 경쟁력은 축적되더라도 산업 전체의 경쟁력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산업 정책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계속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구조를 설계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한국 산업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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