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정책은 왜 서로 충돌하는가

서영현 기자 / 기사승인 : 2026-01-08 1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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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분절 구조의 경제적 비용
부처별 '따로국밥' 행정의 비용, 기업이 떠안는 정책 조정의 실패
▲ 산업 경쟁력은 정책의 물량이 아니라 각기 다른 부처의 제도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렬될 때 비로소 형성되지만, 한국의 현실은 투자 장려와 규제 강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정책 충돌'의 늪에 빠져 있다. 대만식 통합 전략 모델을 벤치마킹한 국가 차원의 정책 조정 기능 강화가 시급하다.(사진=금융위원회)

 

 

산업 경쟁력은 개별 정책의 숫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될 때 형성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실의 정책 구조를 보면 서로 다른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보다 오히려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정부는 투자를 확대하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제도에서는 기업 활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책 충돌은 추상적인 행정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자주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이다. 산업 정책은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산업 성장을 목표로 하지만 금융 정책은 안정성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노동 정책은 고용 보호를 우선으로 두고 환경 정책은 규제와 안전 기준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각각의 정책은 모두 필요하지만 서로 다른 기준에서 만들어지면 기업에게 전달되는 신호는 일관되지 않게 된다.

 

◆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선 컨트롤타워... 정책 조정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최근 산업 현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경기도 용인에 조성되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국 산업 정책의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이곳에는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와 SK하이닉스(SK Hynix)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시설이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논의의 중심에는 공장 건설 자체보다 전력 인프라(power infrastructure) 문제가 등장한다. 첨단 반도체 공장은 일반 제조 공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공장 한 곳이 사용하는 전력량이 중형 도시와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 단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초고압 송전망과 대규모 변전소 같은 전력 인프라가 동시에 구축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 구축이 단일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 정책은 기업 투자를 유도하지만 전력망 구축은 전력 정책과 지역 정책, 환경 정책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의 시간표가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기업은 공장 건설 일정에 맞춰 투자를 계획하지만 전력망 구축은 주민 협의와 행정 절차, 예산 문제를 거치며 훨씬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산업 전략은 하나지만 실행 구조는 여러 기관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규제가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책을 조정하는 구조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산업 정책은 투자 확대를 목표로 하고 전력 정책은 공급 안정성을 우선으로 고려하며 지역 정책은 주민 수용성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각 정책의 목적은 모두 필요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산업 프로젝트 전체가 지연될 수 있다.


비슷한 구조는 다른 산업에서도 나타난다. 전기차 산업에서는 친환경 정책과 자동차 산업 구조 전환 정책이 동시에 작동한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려 하지만 기존 내연기관 부품 산업의 구조 변화와 노동 시장 문제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정책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움직이면 산업 전환의 속도 역시 불균형하게 나타난다.


중소기업 정책에서도 이러한 충돌이 존재한다. 정부는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온라인 플랫폼 진출과 데이터 활용을 장려하고 디지털 장비 도입 비용을 지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데이터 규제와 개인정보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은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약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정책 충돌은 특정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정책은 모두 필요하다. 문제는 정책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될 때 나타난다. 

 

대만 산업 정책에서는 이러한 충돌을 줄이기 위한 조정 구조가 존재한다. 산업 전략이 먼저 제시되고 기술 정책과 무역 정책, 금융 정책이 그 전략에 맞게 조정된다. 산업 정책은 단순히 기업 지원 사업이 아니라 국가 단위 전략 안에서 설계된다. 이 구조에서는 정책이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기 어렵다. 산업 전략이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정책을 하나의 산업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고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기 쉬워진다.


한국 산업 정책에서는 이러한 조정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정책이 부처 단위로 설계되고 평가 역시 부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책이 분절되면 산업 전략 역시 분절된다. 그 결과 정책 충돌의 비용은 결국 기업이 부담하게 된다. 기업은 서로 다른 정책 요구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고 정책 방향이 바뀔 때마다 사업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정책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더라도 정책 간 충돌이 존재하면 기업에게는 또 하나의 비용이 된다.


결국 산업 정책의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정책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가. 산업 경쟁력은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에서 결정된다. 정책이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될 때 기업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장기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계획할 수 있다.

정책 충돌은 정책이 많아서가 아니라 연결되지 않아서 발생한다. 부처 중심 정책 구조에서는 산업 전략이 약해질 수 있고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산업 경쟁력으로 글로벌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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