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바이오 산업과 VC는 왜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가

노금종 기자 / 기사승인 : 2025-09-11 16:26:32
  • -
  • +
  • 인쇄
연구를 움직이는 자본과 수익을 요구하는 자본의 충돌
한국형 상장 모델의 명과 암... 자금 조달의 통로인가, 조기 회수의 수단인가
일본의 '인내하는 자본'... 내부 축적이 만드는 흔들리지 않는 연구 환경
대만의 단계별 자금 분산 전략, 한 기업에 집중된 비용 부담을 덜다
▲ 바이오 산업에서 자본은 단순한 투자금을 넘어 연구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이나, 단기 회수를 원하는 '투자자의 시간'과 장기 검증이 필요한 '연구자의 시간'이 충돌하며 구조적 병목현상을 만들어낸다. 자금 투입이 곧 연구 중단 방지로 이어지는 특수성 속에서, 한국의 단기 압축형 투자 모델을 넘어 일본의 장기 축적형이나 대만의 리스크 분산형 구조처럼 '시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자본 설계가 절실하다.(사진=벡스코)

 

바이오 산업에서는 기술과 자금이 항상 함께 언급되지만 그 관계는 일반적인 산업과 전혀 다른 구조로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탈이라고 불리는 투자 주체는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일정 기간 이후 기업 가치 상승을 통해 수익을 회수하는 방식을 따른다. 투자자는 자금을 넣는 순간부터 회수 시점을 계산하며 성과는 수익률로 평가된다. 이 구조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그러나 바이오 산업에서 자본은 단순한 투자 자금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기업에게 자금은 선택 가능한 요소가 아니라 연구를 지속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실험 장비와 연구 인력, 시약과 데이터 확보 과정은 모두 비용 위에서 이루어지며 자금이 중단되는 순간 연구 역시 멈춘다. 자본은 결과를 확대하는 수단이 아니라 연구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구조로 작동한다.

 

◆ 임상 3상의 거대한 벽, 수천억 원의 자금 수요를 견딜 구조적 대안은?

바이오 기업의 시간 구조는 이 자본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신약 개발 과정은 통상 10년 이상이 소요되며 임상 단계로 이동하는 순간 비용 규모는 급격히 확대된다. 초기 연구 단계에서는 수십억 원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임상 2상과 3상으로 이동하면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이 필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성공 확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 기업은 긴 시간과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자본이 투입되는 방식 자체가 결과를 좌우한다. 연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매출은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현금 흐름은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일반적인 제조 기업과 달리 생산과 판매를 통해 자금이 순환되지 않는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자금은 한 방향으로 소모된다. 수익이 발생하기 이전에 자금이 먼저 사라지는 구조다.


투자자의 시간은 이와 다른 기준 위에 놓여 있다. 벤처캐피탈이 운용하는 펀드는 통상 5년에서 7년 내외의 만기를 가지며 그 안에서 투자와 회수가 이루어져야 한다. 투자 이후 일정 시점이 지나면 기업 가치를 평가하고 회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자금이 장기간 묶일수록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투자자는 시간을 압축하려 한다.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구조적 충돌이 발생한다. 기업은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확보하려 하고 투자자는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시간을 줄이려 한다. 기업이 시간을 확보하면 연구는 안정되지만 투자자의 수익률은 낮아지고 투자자가 시간을 줄이려 하면 기업은 충분한 검증 없이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같은 자금을 두고 서로 다른 목적이 동시에 작동한다.


한국에서는 이 충돌이 시장 구조와 결합되면서 더욱 빠르게 드러난다. 기술이 공개되는 시점에서 자금이 유입되고 기업 가치는 상승하지만 임상 단계에서 추가 자금이 필요해지면 조건이 다시 조정된다. 일정 시점에서는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선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상장은 자금 조달의 수단이 되지만 동시에 투자자의 회수 통로로 작동하면서 시간 구조를 다시 압축한다. 연구가 완성되기 이전에 시장이 먼저 결과를 요구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일본에서는 자본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업 내부에 축적된 자금과 장기적인 연구개발 환경이 시간을 견디는 기반이 된다. 외부 투자 역시 단기 회수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며 임상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된 이후 시장과 연결된다. 자본이 수익을 요구하기 이전에 연구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속도는 느리지만 흐름은 유지된다.


대만에서는 자본이 한 지점에 집중되지 않는다. 연구개발, 임상, 생산 단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각 단계에 필요한 자금이 분산되어 투입된다. 특정 기업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자금이 끊기는 지점이 줄어든다. 자본은 한 번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마다 이동하며 연구를 이어가는 형태로 작동한다.


이 구조를 단순히 투자 환경의 차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본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산업의 흐름이 달라진다.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 자본과 연구를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본이 동일한 구조 안에서 작동하면서 긴장이 형성된다.


문제는 이 긴장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는 계속해서 시간을 요구하고 자본은 계속해서 회수를 요구한다. 임상 단계가 길어질수록 자금은 더 필요해지고 자금이 투입될수록 회수 압박은 더 강해진다. 기업은 다음 단계를 위해 다시 자금을 요청하고 투자자는 이전 투자에 대한 회수를 고민한다.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일한 구조가 단계마다 반복된다.


기술이 실패해서 멈추는 경우도 있지만 그 이전에 시간과 자본의 간격에서 멈추는 경우가 더 많다. 연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이 끊기면 결과는 도달하지 못하고 자금이 유지되더라도 시간 압박이 커지면 기업은 방향을 조정하게 된다. 기술은 존재하지만 그 기술이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족이 아니라 간격 때문이다.


바이오 산업에서 자본은 투자의 언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자본은 연구를 이어주는 흐름이며 단계를 통과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그러나 그 자본은 동시에 회수를 요구한다. 연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과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 자본이 같은 시간 위에 놓이는 순간, 산업은 항상 같은 질문 앞에 멈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금이 아니다. 어떤 시간 위에서 자본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다. 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기술은 계속 등장하고 자본은 계속 유입되지만 결과는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된다.

 

 

소상공인포커스 / 노금종 기자 nkj1966@ilyoweekly.co.kr 

[저작권자ⓒ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