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한국 중소기업 정책은 왜 복지 정책이 되었는가

김경훈 대기자 / 기사승인 : 2025-08-19 16:48:01
  • -
  • +
  • 인쇄
성장 전략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지원의 구조
비용을 줄여주는 ‘복지’인가, 구조를 바꾸는 ‘전략’인가... 정책 지표의 전면 개편 시급
▲ 정부의 지원 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중소기업들은 "도움은 받았어도 시장 지배력은 그대로"라며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을 보호하고 비용을 덜어주는 '복지형 지원'에 매몰된 현재의 방식으로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할 수 없으며, 대만처럼 정책의 목표를 개별 기업의 생존이 아닌 '산업 전체의 시장 지배력 강화'와 '수출 구조 혁신'으로 재설계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사진은 부산국제수산엑스포 현장 모습으로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벡스코)
 

현장에서 만나는 중소기업 대표들은 정부 지원사업에 대해 놀라울 만큼 비슷한 표현을 쓴다. “도움은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에 참여해 설비를 교체했고, 수출 바우처를 통해 해외 전시회에 나갔으며,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브랜드 전략 보고서까지 받았지만 정작 매출 구조와 가격 결정력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반복된다.


지원은 분명 존재하고 예산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변하지 않는 이 기묘한 상황이 바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책의 실체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더 이상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왜 우리는 계속 납품 단가를 협상하지 못하는 구조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책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산업의 위상은 그대로인 현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은 성장 전략이 아니라 생존을 돕는 복지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지원의 부족이 아니라 정책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대부분의 사업은 단년도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기업이 시장에서 위치를 바꾸는 장기 전략과 연결되지 못하고, 성과 평가 역시 매출 증가나 수출 계약 지속 여부가 아니라 사업 집행률과 참여 기업 수로 측정된다. 이 구조에서는 기업이 실제로 성장했는지가 아니라 예산이 계획대로 사용되었는지가 정책의 성과가 된다. 

 

또한 지원사업은 부처별로 분절되어 있어 기술 지원, 판로 지원, 금융 지원이 하나의 산업 전략으로 묶이지 않는다. 현장의 기업은 각각의 사업에 따로 참여해야 하고, 그 결과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결국 기업은 지원사업의 수혜자가 되지만 시장의 플레이어로서 포지션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책은 산업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장치처럼 인식되기 시작한다.


◆ 산업을 설계하는 정책만이 시장 지배력을 만든다


대만의 중소기업 정책이 한국과 다르게 체감되는 이유는 지원의 규모가 아니라 정책의 목표가 산업의 위치 변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기업들은 특정 지원사업에 참여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산업이 어느 시장에서 몇 퍼센트 점유율을 갖고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확보된 기술은 개별 기업의 성과로 끝나지 않고 산업 전체의 경쟁력으로 축적되며, 전시회는 참가 실적이 아니라 실제 수출 계약과 글로벌 유통망 진입으로 이어진다. 정책의 성과가 기업의 생존이 아니라 산업의 지배력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기업은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차이가 현장에서 느끼는 정책의 온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한국의 정책이 기업을 보호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면, 대만의 정책은 산업이 시장을 지배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기업이 지원을 받았는지가 중요하지만, 대만에서는 그 결과 산업의 수출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핵심 지표가 된다. 이 차이로 인해 한국의 중소기업 대표들은 정책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대만의 기업들은 정책을 “시장에 들어가는 통로”로 인식한다.


정책이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면 기업은 유지되지만, 정책이 시장 구조를 바꾸면 산업이 성장한다. 지금 두 나라의 정책 체감 온도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단순하다. 지원사업의 수가 아니라 이 사업이 우리 산업의 가격 결정력을 바꾸는가. 전시회 참가 횟수가 아니라 우리 제품이 글로벌 유통망에 들어갔는가. 스마트공장 구축 여부가 아니라 이익 구조가 개선되었는가. 정책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중소기업 정책은 계속 복지처럼 작동할 수밖에 없다.

기업을 살리는 정책은 생존을 늘리지만 산업을 설계하는 정책만이 시장 지배력을 만든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저작권자ⓒ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경훈 대기자

오늘의 이슈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