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대만 청년은 왜 중소기업으로 들어가는가

김경훈 대기자 / 기사승인 : 2025-06-24 13: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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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가능한 산업 생태계가 만든 선택의 구조
"취업자 수보다 근속의 질이 우선"... 중소기업 정책, '기술 축적 구조' 설계로 전환해야
▲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낮은 임금보다 ‘경력 성장이 멈춘 구조’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하며, 단순 생산 유지에 급급한 납품 중심 산업 구조가 근속을 경력 단절로 만들고 있다.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경로가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시간이 탈출’하는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만처럼 실무가 기술 축적과 시장 협상력으로 이어지는 ‘산업적 커리어 로드맵’ 설계가 시급하다.사진은 2025 부산국제기계대전 현장 모습으로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벡스코)

 

취업 설명회 현장에서 만난 한 청년의 말은 짧았지만 구조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중소기업에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3년 뒤 제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를 단순히 임금 수준이나 복지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이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초봉이 낮아서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불안이 훨씬 크다.


입사 후 맡게 되는 업무는 대부분 생산 유지나 납기 대응에 집중되어 있고, 교육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아예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이 경험이 다음 단계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반복되면서 근속 기간은 곧 경력 공백 기간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청년에게 중소기업 취업은 경력의 시작이 아니라 ‘다음 이직을 준비하는 임시 구간’이 된다.


◆ 문제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남지 않는 구조다


이 현상의 출발점은 납품 중심의 산업 구조다. 단가를 결정할 수 없는 기업은 물량으로 매출을 유지해야 하고, 물량 중심의 운영에서는 생산 일정이 교육보다 항상 우선한다. 그 결과 신입 인력은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공정을 유지하기 위한 인력으로 배치된다. 직무 교육은 사라지고 숙련은 개인의 몫이 되며, 회사는 인력을 키우기보다 버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구조에서는 근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전문성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피로도가 누적된다. 이직이 반복될수록 청년의 경력은 단절되고, 기업은 다시 인력난을 호소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 멈춘 구조에서 시간이 탈출하는 것이다.

대만의 중소기업에 입사한 청년의 첫 업무는 단순히 생산 공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참여하는 공정이 어떤 글로벌 기업의 어떤 제품으로 연결되는지, 이 부품의 기술 개선이 거래 조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된다.


대만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특정 기술 분야에서 독립적인 공급자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협상과 기술 개선 과정이 분리되지 않는다. 생산 현장에서의 경험이 곧 연구개발의 기초가 되고, 연구개발의 결과가 다시 시장에서의 협상력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에서는 신입사원이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미래의 기술 인력으로 인식된다. 회사의 매출이 늘어날수록 교육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증가하고, 개인의 시간이 곧 산업의 경쟁력으로 축적된다. 첫 직장이 곧 커리어의 시작점이 되는 구조다.

한국 청년은 회사를 선택하지만 대만 청년은 산업 안으로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회사가 흔들리면 개인의 경력도 함께 흔들리지만 대만에서는 기업이 바뀌어도 기술과 프로젝트 경험이 남는다. 이 차이는 취업 시장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한국에서는 중소기업 취업이 ‘임시 선택’이 되지만 대만에서는 산업 진입의 첫 단계가 된다. 결국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기업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 경로가 보이지 않는 산업 구조의 문제다. 청년 고용 정책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취업시키는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취업자 수는 늘어도 근속 기간이 짧아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력이 만들어지지 않는 구조에서 취업은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원금은 입사를 늘릴 수는 있지만 시간을 축적시키지는 못한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배운 시간이 남는 직무 구조이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인건비 지원이 아니라 기술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산업 환경이다.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 산업에 들어오면 기술이 축적되는가, 경력이 이동 가능한 형태로 남는가,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가, 이 세 가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청년 정책은 계속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청년이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기업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이 성장으로 전환되지 않는 산업 구조에 있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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