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성과로 사라지는 데이터"... 한국 중소기업, '학습 곡선' 없는 무한 반복 경쟁
대만 ITRI의 교훈... 중소기업 정책은 '지원 행정'이 아닌 '정보 시스템 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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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중소기업 정책이 직면한 근본적인 한계는 지원 규모의 부족이 아니라, 산업의 핵심 자산인 ‘시장 정보’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그동안의 정책이 개별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행정적 지원 단위’에 매몰되면서, 기업이 시장에서 겪은 경험과 데이터가 산업 전체의 경쟁력으로 전이되지 못하고 휘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이미지=중소기업벤츠기업부) |
한국 중소기업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자금 규모나 지원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정보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산업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생산 능력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가격 형성 구조, 수요의 흐름, 유통 채널의 집중도, 소비자 접근 비용과 같은 시장 데이터가 축적될 때 기업은 비로소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그 축적된 정보가 다시 산업의 진입 장벽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오랫동안 ‘지원 단위’로 설계되어 왔기 때문에 데이터는 행정의 성과 자료로 남을 뿐 산업의 자산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현재의 지원 사업 구조에서는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정보가 다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공유되지 않는다. 동일한 전시회에 매년 참가하고, 동일한 수출 상담을 반복하며, 동일한 유통 구조에서 같은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 결과는 정책 보고서의 실적 수치로만 남는다. 이는 단순한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조직 방식의 문제다. 정보가 축적되지 않는 산업은 학습 곡선을 만들 수 없고, 학습 곡선이 없는 산업은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
대만의 접근은 여기서 완전히 다르다. 대만은 중소기업 정책을 ‘지원 행정’이 아니라 ‘산업 정보 시스템 구축’으로 설계했다. 대만의 산업기술연구원(ITRI, 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은 기술 개발 기관이지만 동시에 산업 데이터의 축적 기관이다. 기술 이전 과정에서 어떤 기업이 어떤 시장에 진입했고 어떤 가격 구조에서 경쟁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며, 이 정보는 다음 기업의 시장 진입 비용을 낮추는 공공재로 기능한다. 여기에 대만무역발전협회(TAITRA, Taiwan External Trade Development Council)가 운영하는 전시·수출 플랫폼이 결합되면서 바이어 정보, 계약 성사율, 국가별 수요 변화와 같은 시장 데이터가 산업 단위로 축적된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시장 정보가 금융 구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존재하는 산업은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할 수 있고, 미래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한 산업은 담보가 없어도 투자 자금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데이터가 없는 산업은 기술력이 있어도 신용을 얻기 어렵고, 결국 부동산 담보에 의존하는 금융 구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 중소기업 금융이 ‘성장 자금’이 아니라 ‘운전자금’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지역균형발전 논의와도 직접 연결된다. 지금까지의 균형발전 정책이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물리적 분산에 집중해 왔다면, 그것은 행정 서비스의 소비를 지역으로 옮긴 것에 가깝다. 그러나 산업 데이터가 축적되는 구조가 지역에 형성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정 산업에 대한 시장 정보, 기술 정보, 인력 정보가 지역에 축적될 때 그 지역은 외부 재정 이전 없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경제 단위를 갖게 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것이 바로 집적의 외부효과(agglomeration externalities, 집적 외부효과)이며,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이러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시장 데이터를 갖지 못하는 것은 기업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제도의 설계 방식 때문이다. 기업은 데이터를 만들고 있지만 그것이 산업의 자산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행정의 성과로 소멸되고 있다. 그래서 동일한 실패가 반복되고 동일한 비용이 다시 발생하며 동일한 지원 사업이 계속 필요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 사업의 확대가 아니라 시장 정보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산업 플랫폼의 설계다.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때 만들어지는 모든 경험이 다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공공 자산으로 전환될 때, 중소기업은 비로소 개별 생존 단위를 넘어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행정이 이동한다고 지역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데이터가 축적되는 곳에 시장이 형성되고 시장이 형성되는 곳에 사람이 남는다. 지방을 살리는 것은 청사 이전이 아니라 기업을 유지 보존 경쟁력 강화가 근본이 되어야 한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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